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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IVF 2020-04-22 조회9,625회 댓글0건

[D-review]
우린 아벱(ivf)이고, 우린 네가 궁금해 :) | 오은진(북서울지방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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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나의 외로움을

혼자 삼키며 살았고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사는 줄 알았다.


“사람은 혼자 살 수 없어. 인생은 함께 살아 가는 거야.”

19살. 어느 수업 시간에 내가 가장 좋아하는 선생님이 하셨던 말이다. 하지만 속으로 생각했다. ‘선생님이 아직 인생을 잘 모르시네. 인생은 혼자 사는 건데.’ 나는 정년을 몇 년 앞두신, 머리가 희끗희끗한 선생님의 말씀 을 비웃었다. 이런 생각을 확신할 정도로 나는 참 외롭게 살았다. 사실 내가 외로운지도 모르고 살았다. 나에게 세상은 숨 막히는 곳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그래서 이 세상을 몇십 년 동안 살아가는 어른들이 신기했고, 25살까지만 살아도 내 인생은 충분하다 생각했다.

나는 IVF에 2학년 때 들어왔다. 처음 일년은 IVF가 어떤 곳인지 잘 파악하지 못했다. 그냥 교회의 연장선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우연히 간사님과 원투원을 하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간사님과 원투원이라니. 어색했지만 간사님도 나와 전공이 같다는 걸 알게 되면서 말문이 트였다. 이런저런 얘기들을 늘어놓다 보니, 한 시간이 훌쩍 지났다. 그렇게 끝날 줄 알았던 원투원이었지만, 간사님은 요즘 내 삶이 어떤지를 듣고 싶다고 했다.

사실 그때 나는 많이 힘들었다. 가난한 가족은 점점 날 짓눌렀다. 크고 작은 사건들로 우리는 서로를 돌볼 여유가 없었고, 서로 상처만 주고받았다. 그 당시 썼던 일기의 표현을 빌리자면 ‘우울의 끝을 달리고 있는’ 시간이었다. 나는 나의 우울을 전공 시간에 배웠던 포스트모더니즘과 무신론으로부터 위로받고자 했다. 하지만 간사님께 대충 간단하게만 말했다. 어차피 이런 순서로 마무리될 대화일 게 뻔했다.


“은진아. 지금 네가 힘든 건 충분히 알겠어. 근데, 지금 너는 뭐랄까. 겉의 이야기만 빙빙 돌려서 말하는 느낌이야.”


의외의 대답이었다. 간사님의 그 말을 듣고 뜨끔했다. 그리고 무슨 마음이 들었는지, 숨을 한 번 고르고 내가 십여 년 동안 아무에게도 하지 않았던 이야기를 꺼냈다. 우리 가족, 어린 날의 상처들, 그래서 사랑받지 못한다 고 느껴지는 내 일상들. 그런데 긴 이야기가 끝난 후 간사님은 물으셨다. 네가 이런 얘기 를 하는 사람이 또 누가 있냐고. 한두 명 정도 있다고 대답했다. 근데 사실은 한 명도 없었다. 나는 외로움을 혼자 삼키며 살았고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사는 줄 알았다. 대화가 끝난 후 간사님은 내 손을 잡으며 말씀하셨다.

“은진아, 그렇게 살지 않아도 괜찮아.”


그 말을 듣고 눈물이 흘렀다. 그렇게 처음 본 간사님이랑 장장 4시간을 이야기했다.

간사님과의 원투원으로 내 인생은 바뀌지 않았다. 오히려 더 외로웠다. 내 주위에는 여전히 아무도 없었다. 아니 없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IVF에 들어온 첫 순간부터 내 주위에 는 내 이야기를 궁금해하고, 귀 기울여줄 사람들이 있었다는 걸 서서히 깨닫게 되었다. 이들은 나의 마음을 섣불리 판단하거나, 가볍게 위로하지 않았다. 그렇게 IVF라는 공동체 안에서 받은 사랑과 만남이 나를 서서히 변화시켰다.

좋아하는 노래 가사를 빌리자면 IVF는 내가 아픈 길을 계속해서 걸어갈 수 있게 해주는, 가끔 보이는 꽃들을 피워준 곳이다. 나는 더이상 외로움을 혼자 감당하지 않고 주위에 도움을 구할 줄 알게 됐고, 숨 막히는 세상에서 한숨 돌리고 쉬어갈 줄도 아는 사람이 됐다. 홀로 눈물을 삭히고 있던 어린아이는 이제 그러지 않아도 된다는 걸 안다. 함께 울어 주고, 안아주고, 안부를 물어줄 사람들이 생겼으니까. 



오은진(북서울지방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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