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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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 2021-05-24 조회8,814회 댓글0건

[소리정음]
나만 타고싶은 따릉이 [길거리의 일상, 나의 출퇴근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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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소리] 2021 두 번째 소리 04+05호(통권255호)에 실렸던 글입니다.




[길거리의 일상, 나의 출퇴근길]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반복해서 마주하는 익숙함이 있습니다. 바로 출퇴근길입니다. 

지루한 일상이면서도 어쩌면 가장 친밀한 시공간이지요. 

지상과 지하를 막론하고 ‘길’ 위에는 다채로운 이야기가 숨어있습니다. 

지하철, 버스, 자가용, 자전거, 그리고 걷는 것까지, 우리는 다양한 수단을 이용해 길거리의 일상을 누빕니다. 

또한 출퇴근길의 오가는 시간을 활용해 보고, 듣고, 읽고, 쓰고, 생각하고, 기도합니다. 


이번 호에서는 이렇게 출퇴근길에서 일어나는 일상적인 이야기를 모았습니다. 

평범하기 그지없는 출퇴근길에서 이렇게 다양하고 아름다운 이야기가 나올 줄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여러분의 출퇴근길에는 어떤 이야기가 있는지, 오늘 한 번 찾아보세요. 



▶ 나만 타고싶은 따릉이_전전

▷ 다채로운 변화 속으로 걸어가는 출근길_정영석

▷ 길고 긴 출근길에서 얻은 유익_조찬일

▷ 편도 한 시간, 대구 지하철의 출퇴근 여행_원세연

▷ 운전대 앞에서 빛나는 출퇴근길_이지현





나만 타고싶은 따릉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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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자전거 '따릉이'


 

◆ 전전(고려대98)

긴 출퇴근길 때문에 새벽같이 일어나는 아내를 대신해서 

두 초등학생의 등교 전쟁과 저녁 식사 준비를 도맡아 할 수 있는 행운의 직장인.



출근길에 집을 나서면서 제일 먼저 하는 일은 핸드폰으로 ‘따릉이 어플’을 확인하는 거다. ‘즐겨찾기’ 해놓은 아파트 단지 입구 대여소에 타고 갈 자전거가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다. 혹시라도 그곳에 자전거가 없으면 그다음으로 가까운 대여소를 찾고, 거기도 비어 있으면 그다음 가까운 대여소까지, 세 번 정도 고민할 기회가 있다. 엘리베이터가 1층에 닿을 때까지 빨리 결정을 내리자. 탈 것이 없으면 얼른 지하철역으로 발걸음을 돌려야 하니까. 옳지, 오늘은 처음부터 석 대가 남아 있다. 


몇 년 전, 경기도 고양시에서 일할 때 공공자전거를 몇 번 이용했다. 그때의 경험이 좋았던지라서 울도 도입하길 늘 바랐다. 얼리어답터와는 거리가 먼 사람이지만, 따릉이는 처음 생겼을 때부터 정기이용권을 사서 이용하고 있다. 출퇴근을 자전거로 한다고 하면 주변에서는 건강을 위해서인 줄 아는데, 이유는 따로 있다. 교통비를 아끼기 위해서다. 교통카드를 기준으로 지하철 한 번 탈 때의 요금보다 따릉이를 탈 때의 비용이 더 싸다. 게다가 한 번에 1시간짜리 대여료 천 원도 저렴하지만, 1년 정기이용권이 3만 원이라니 얼마나 이득인가. 


출퇴근 시간도 계산해보았다. 집에서 사무실까지, door to door로 지하철을 타고 이동하면 40분. 따릉이를 이용해도 40분이다. 건강을 위해서 자전거를 한 대 장만해도 좋겠지만, 오래된 아파트에 보관해 둘 장소도 마땅치 않았는데 아파트 입구에 대여소가 생긴 것은 행운이었다. 반면에 사무실 근처에는 따릉이 대여소가 없다. 가까운 대여소까지 도보로 10분 정도인데, 이건 지하철 역에서 사무실까지 걷는 시간과 별반 차이가 없다. 지금 이용하는 대여소에서 사무실까지는 오르막길이니, 자전거 타는 것보다 그냥 걷는 게 오히려 수월하지. 내 인생에 이렇게 모든 조건이 딱 딱 들어맞은 경우가 있던가. 출퇴근을 따릉이로 하려고 결정하는 데는 1분의 고민도 필요 없었다. 자전거를 타는 시간은 채 25분이 안 되는데, 이 정도로는 건강에 큰 보탬이 되지는 않으리라. 이왕이면 뱃살이 빠지길 살짝 바라지만, 우리는 알지. 다이어트는 기도와 소망만으로 안 된다는 걸. 


대여소에 주차된 석 대의 자전거 중 하나를 고른다. 카드로 태그해서 비밀번호를 눌러 사용하는 초기모델도 있고, QR코드로 스마트폰 어플과 연동해서 대여하는 최근 모델도 있다. 역시 최근 모델이 편리하다. 앞에 이용하던 사람이 다리가 좀 긴 양반이었나 보다. 안장 높이 조절을 하고 헬멧 쓰고 출발! 처음엔 헬멧 없이 그냥 타고 다녔다. 한참 사람들이 자전거에 관심이 많아지고 자전거 이용자가 늘어나면서, 헬멧을 사용하는 안전수칙 관련한 이야기가 미디어에 회자되었더랬다. ‘아니, 공공자전거 이용하는 제일 큰 이유가 관리하는 번거로움이 없다는 건데, 필요할 때 잠깐 타려고 헬멧을 들고 다니란 거야?’ 나는 속으로 툴툴 대던 참이었다. 그런데 한 친구 녀석이 헬멧 없이 자전거 타려는 이들의 기사를 페이스북에 공유하면서 혀를 끌끌 찼다. 내 친구들이 이렇다. 그날 슬그머니 자전거 헬멧을 인터넷에서 제일 싼 녀석으로 하나 구입했다. 안정성 면에서는 무척 조악하겠지만, 솔직히 비싸고 좋은 자전거 헬멧은 바구니 달린 초록색 자전거랑 어울리지도 않을뿐 더러 1년 자전거 대여료보다 비싼 헬멧을 살 만큼 공을 들이고 싶지 않았다. 비싸고 멋진 싸이클을 다룬다면 모르지만 말이야. 너무 싸구려 같고 심심해 보여서 스티커를 하나 붙여봤다. 뭐 이 정도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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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릉이와 함께하는 나의 헬멧


신호등이 있는 건널목을 몇 번 건너긴 하지만, 대부분의 코스는 하천 옆 자전거도로다. 이 정도면 서울 도심 안에서 자전거 출퇴근길로는 최고의 컨디션이지. 한여름과 한겨울은 지하철로 출퇴근하다가 봄을 맞아 다시 따릉이를 탄다. 날이 따뜻해질수록 청계천에 조깅이나 걷기 운동하는 사람들도 많이 보인다. 아직은 겨우내 마른 풀이 대부분이지만, 조금 있으면 길가에 벚나무가 만개하겠지. 벚나무의 꽃이 날릴 때 그 밑을 자전거로 지나면 괜히 영화 속 한 장면의 주인공인 듯 기분이 좋아진다. 이런 멋진 내 모습을 상상하는데, 더 멋진 자전거에다 복장을 제대로 갖춘 라이더 두 명이 앞질러 간다. 저런 자전거는 비싸겠지만 그만큼 가볍고 튼튼하겠지? 1년에 3만원씩 10 년이면 30만 원이고 20년이면 60만원인데, 그냥 하나 장만하는 것은 어떨까 생각했다가 이내 마음을 접는다. 20년 동안 출퇴근할 수 있을지가 먼저지. 


요즘은 그런 경험이 적은데, 따릉이가 처음 나왔을 때만 해도 내가 대여소에서 자전거를 대여하면 주변을 서성이면서 관찰하던 어르신이 다가와 이용 방법을 묻곤 했다. 신용카드를 미리 등록하거나 스마트폰 어플을 이용한다는 말만 꺼내도 쉽지 않은 듯이 대부분 돌아선다. 나도 자세히 설명하고 싶어도 충분히 이해시켜 드릴 자신이 없었다. 어르신들에게 좋은 교통수단일 수 있겠다 싶으면서 한편으로는 PC와 스마트폰에 익숙하지 않으면 활용하기 어려운 단점도 있음을 인정해야 하는 순간이다. 어르신 전용 따릉이 카드 같은 걸 발급하면 어떨까 생각도 했고, 학생들이 따릉이 사용법을 안내하는 봉사활동 같은 걸 만들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나중에 시민 아이디어 공모전 같은 데 한번 제안해 봐야겠다. 도심에서 어르신들이 이용하시기에는 좀 위험하려나? 


늘 가는 코스에, 인도 보도블록 높이로 자전거 전용도로가 생겼다. 원래 그 자리가 자전거 전용도로이기는 했는데, 예전엔 그냥 차도랑 같은 길에 색칠만 따로 해놓았던지라 위험에 늘 노출되어 있었다. 생각해 보면 사실 서울 도심은 자전거를 이용하기에는 썩 좋지 않은 곳이다. 차도 쪽은 당연히 자전거가 위험하고, 반대로 인도에서는 보행자들에게 자전거가 위협적인 존재다. 울퉁불퉁한 보도블록 위를 다니는 것도 불편하지. 강변으로 자전거도로가 잘 마련되어 있으니 자전거로 운동하기에는 좋지만, 도심 안에서는 여전히 열악한 게 사실이다. 그러니 출퇴근 길을 두 개의 하천 자전거 전용도로로 다닐 수 있는 내가 얼마나 행운인가. 어쩌면 공공자전거 수를 늘리는 것 보다 안전한 자전거 전용도로를 확충하는 것이 더 시급한 문제일지 모르겠다. 아, 시민 아이디어 공모에 이걸 제안해 볼까? 


이제 청계천에서 성북천으로 코스를 옮긴다. 멈춰 있는 듯 조용한 하천도 돌다리를 지나는 구간은 물 흐르는 소리가 자글자글 귀를 간질인다. 오늘 이어폰을 빼고 달리길 잘했다. 그러고 보니 따릉이로 출근할 때 편하려고 이어폰도 유선 이어폰에서 무선 헤드폰으로, 다시 무선 이어폰으로 바꾸어 왔네. 헬멧이다 무선 이어폰이다, 교통비 아끼려는 따릉이 이용자도 이만큼인데, 자전거 타기를 취미로 하는 사람들은 얼마나 장비 욕심이 날지 조금은 이해가 간다. 앞에서 젊은 사람이 전동스쿠터를 타고 마주 보고 달려온다. 아까 앞지른 멋진 자전거 라이더보다 괜히 더 멋있어 보인다. 요즘은 저것도 대여해서 많이 쓰는데, 길 아무 데나 주차되어 보행에 불편을 주는 것을 보면 정해진 대여소에 주차하는 따릉이가 훨씬 공공성 면에서 낫지, 흠흠. 아무도 듣지 않는 자부심을 뽐내본다. 


이런 나란 인간의 허세와는 상관없이 유유히 성북천을 떠다니는 청둥오리 세 마리가 보인다. 한참 스트레스가 쌓일 때 여유로워 보이는 그 녀석들을 부러워한 적이 있는데, 정작 본인들은 가뭄에 먹고살기 힘들지 누가 알겠어? 이런 쓸데없는 의미부여에 아랑곳하지 않고 오리 한 마리가 자맥질한다. 부디 먹이를 잡는 데 성공했길 바라. 하천 건너편에 커다란 개와 산책하고 있는 이가 보인다. 여기는 자전거와 보행자 도로를 구분했다가 지금은 합쳐서 사용하는데, 가끔 작은 강아지 두세 마리를 데리고 산책하는 이들을 만나면 자전거에서 내려서 끌고 걷는다. 특히 조심해야 할 순간이다. 다리 밑 그늘 벤치에는 어느 노숙자의 짐이 한 보따리 놓여 있다. 그마저도 산책하는 이들, 반려견들, 하천의 청둥오리까지 함께 바라보면 평화로운 풍경이다. 한번은 그간 하천에서 보지 못했던 하얀 새가 먹이를 찾아 열심히 주억거리는 걸 본 적이 있다. 두루미는 아닐 테고 도심 하천에 저런 새도 사나 싶었다. 무언가 나의 출퇴근길을 낭만적으로 그리고 싶어서 사진을 찍어 페이스북에 올렸다. 그건 왜가리일 테고 왜가리는 상위포식자란 댓글이 나의 낭만을 깨부쉈다. 아까 말했던 그 친구다. 


이제 도착. 반납 알림음을 확인하고 헬멧을 벗는다. 이때 눌린 머리가 늘 신경 쓰인다. 친구 녀석만 아니었으면 안 샀을텐데…. 코로나 때문에 대여소마다 비치된 손소독제로 손을 닦고 이제 사무실로 향해 걸어가면 된다. 아 맞다. 혹시나 해서 다시 뒤돌아 바구니를 확인한다. 바구니에 물건을 두고 그냥 길을 나선 적이 너무 많았기 때문에 습관을 들여야 하는데 매번 잊는다. 한번은 새로 산 삼각대를 바구니에 그냥 두고 출근한 뒤, 점심시간이 되어서야 깨달은 적도 있다. 두 시간이 넘도록 잊고 있었던 삼각대 주인이 헐레벌떡 대여소를 찾아갔을 때, 다행히 물건이 바구니에 든 채 그 자전거만 대여소의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머리가 나쁘면 몸이 고생한다던가. 그래도 뱃살은 안 빠지겠지. 


여러 사람이 함께 이용하는 특성상 고장도 나고 그것 때문에 불편을 겪는 일도 종종 발생한다. 그럼에도 지금 내게 최적의 출퇴근 수단임을 부정 할 수 없다. 그렇다고 열심히 공공자전거 전도사를 자처하지는 않는다. 바로 이따가 퇴근할 때를 위해서다. 퇴근할 때도 출근 때처럼 제일 먼저 어플에서 자전거가 얼마나 남았는지 확인한다. 한두 대 정도 있을 때는 중요한 선택의 기로에 선다. 대여소가 가까운 집 앞과 달리 사무실에서 10분 정도 걸어가고 나면 그새 누가 먼저 따릉이를 빌려 가는 경우가 부지기수이기 때문이다. 날씨가 따뜻해지면 그런 일이 더 많이 발생한다. 두 대 정도 남았다고 안심하고 갔다가, 봄바람 내음에 취해 자전거데이트를 하려고 대여소 앞에서 꽁냥꽁냥 따릉이를 빌리는 커플을 바라보는 내 심정이란…. 그러면 지하철역까지 다시 15분을 걸어야 한다. 안 돼! 따릉이를 이용하는 사람들이 자꾸 많아지면 말이야! 에잇, 아까 어르신들이 더 많이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아이디어도 내지 말아야지. 


자전거로 출퇴근해도 빠지지 않는 내 뱃살에는 욕심꾸러기가 가득한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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