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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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 2021-10-29 조회7,042회 댓글0건

[소리정음]
내 방에서 버려지는 것들 [내 방으로 떠나는 작은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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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소리] 2021 네 번째 소리 08+09호(통권257호)에 실렸던 글입니다.




[내 방으로 떠나는 작은 여행]


 내 방, 조금은 열린 공간 _ 국효숙

 내 방에서 버려지는 것들 _ 채한울 

▷ '나의', 아닌 '우리의' 공간 _ 박중성 

▷ 코로나 기간, 두 아들과 함께한 '내 집 여행기' _ 이수진







내 방에서 버려지는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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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움과 채움을 반복하는, 내 방을 닮은 사진들

                                                                                                                                                                                             

 

◆ 채한울 (유니스트12) 

‘MBTI 검사’를 하면 ‘ISFP’와 ‘ISFJ’가 번갈아 나오는, 웃음이 많은 사람입니다. 

맛있는 음식 먹는 것을 좋아하고, 책, 영화, 드라마를 좋아하고, 걷는 것을 좋아합니다. 

겨울보다는 여름을, 바다보다는 산을 더 좋아합니다.




나는 서울에서 7평정도 되는 작은 원룸에 살고 있다. 원룸에서 혼자 생활한 지 3년이 되어 간다. 어렸을 때는 부모님과 함께 아파트에서 살았고, 대학생이 되어서는 기숙사에서 룸메이트와 함께 지냈다. 대학을 졸업하고는 동생이 지내던 원룸에서 동생과 함께 자취를 하기도 했다. 지금은 직장으로 인해 동생과 떨어져서 나 홀로 원룸 라이프를 시작하게 되었다. 


동생과 함께 살던 원룸은 9~10평 정도로, 낡지만 혼자 살기에는 제법 큰 원룸이었다. 7개월 정도 큰 원룸에서 살다가 살고 있는 곳과 먼 지역으로 출근을 하게 되면서 이사를 결심했다. 출퇴근 셔틀버스가 다니며 교회와 가까운 지역으로 이사를 했고, 반강제적으로 짐을 줄여야 했다.


새로 구한 집은 6~7평 정도 되는 작은 공간. 이 전에 살았던 방에 비하면 크기가 작다. 새 보금자리에는 더 작아진 냉장고, 더 작아진 부엌, 더 작아진 방이 있었다. 이전보다 더 커진 게 있다면 창문의 크기가 유일했다. 집의 크기를 줄이는 이사를 하면서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물건을 비우는 것이다. 


짐을 줄이기 위해 집에 어떤 것들이 있나 유심히 살펴보았다. 침대, 화장대, 공기청정기, 제습기 등, 뭔가 필요하다 싶으면 참지 않고 물건을 구매했던 나의 소비 습관과 더불어, 먼저 이사를 나간 동생이 일부 놓고 간 짐들까지 꽤 많은 물건들이 있었다. 짐을 줄이기 위해 이북을 이용하겠다고 구입한 전자책 리더기가 무색하게도, 책꽂이에는 책들이 가득하다 못해 바닥에까지 쌓여있었다. 화장대에는 사용하지 않고 차곡차곡 모아둔 화장품 샘플과 손거울, 잡다한 소품들이 서랍과 화장대 거울 뒤쪽 공간을 차지하고 있어 더 이상 다른 물건이 들어갈 공간이 없었다. 4단 행거도 마찬가지였다. 옷이 넘쳐 바닥에 옷을 보 관해야 했고, 각종 잡동사니를 넣어두는 박스도 2개나 있었다. 이사를 생각하고 나니 ‘어떻게 이사하지?’ 하는 걱정부터 들었다.


본격적으로 짐을 줄여나가기로 마음먹었다. 한 번에 이것저것 하지 않고 하나씩 순서대로 정리 했다. 화장품, 옷, 책, 잡동사니 박스를 하나씩 정리했다. 숱한 물건이 쓰레기가 되었고, 매일 쓰레기를 한가득 버렸다. 다음에 써야지 마음먹고 차곡차곡 모아두었던 화장품 샘플은 유통기한을 알 수 없어 쓰레기통으로 향했다. 오랫동안 입지 않은 옷들도 버렸다. 오랫동안 냉동실에서 시간이 멈춰있다고 믿었던 음식, 식재료 등도 전부 쓰레기통으로 직행했다. 마지막으로 침대를 버리면서 이사 준비를 마무리했다. 이 과정을 거치면서 내 가 여태 이고 지고 살았던 많은 물건이 사실 그닥 필요하지 않은 짐덩이뿐이었다는 걸 깨달았다.


이슬비가 오는 여름, 이사를 했다. 짐을 많이 줄이고 왔다고 생각했는데 작은 집에 짐을 옮겨놓으니 그게 아니었다. 가뜩이나 작은 집이 짐으로 인해 더 비좁았다. 이번 이사로 나는 깨달았다. 물건이 많은 것이 좋은 것은 아니다. 2년마다 이사를 다녀야 하고 원룸에 살아야 한다면, 꼭 필요한 것들만 남기고 물건을 비워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이전에 살던 집은 동생이 살던 집에 들어가 산 거라 내가 집을 선택하지 않고 그냥 살았다. 하지만 새로 이사한 방은 내가 직접 발품 팔아 선택한 집이다. 비록 방은 작지만 큰 창문이 2개나 있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고, 햇살이 잘 드는 집이라 좋았다. 화장실 안에 보일러실 겸 창고가 있는 것도 좋았다. 이렇게 나는 이 작은 집에 여러 가지 장점을 생각하며 정을 붙였다. 낯선 동네, 이 작은 공간에서 새로운 삶이 시작되었다. 


그런데 새로운 집에서 살다 보니 짐이 또 조금씩 조금씩 늘어갔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매번 입을 옷이 없었다. 행거에 옷이 가득한데도 계속 옷을 샀다. 그러던 어느 날, 사달이 났다!! 퇴근 후 행거에 외투를 거는 순간 옷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행거가 내 위로 와장창 무너져 내렸다. 정말 아찔 한 순간이었다. 쏟아지는 옷들이 내 눈앞에서 슬로우모션처럼 지나갔다.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 잠깐 그대로 멈춰 서서 방을 훑어보았다. 방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정말 난감했다. 심지어 당시 친구를 초대하고 치킨을 주문해서 기다리는 중이었다. 나는 옷이 쏟아지지 않은 곳에 겨우겨우 자리를 만들어 난리통 현장에서 식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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넘어진 행거로 난장판이 된 집 



친구가 돌아간 후 침대 위와 바닥에 쏟아진 옷들을 정리했다. 사실 정리가 아니었다. 그냥 한쪽으로 다 밀어 놓고 일단 공간을 만들었다. 그리고는 겨우 행거를 세웠다. 행거를 세우고 나서 고민에 빠졌다. 밤새워 이 옷을 다 정리할 것인가? 아니면 침대 위만 대충 정리하고 잠을 자고 나서 다음 날 정리할 것인가? 그러다 퍼뜩 다음 날 ‘토비새 (토요비전새벽예배)’가 있다는 사실이 생각났다. 일단 내일 입을 옷을 챙겨놓고 침대 위에 있는 옷들은 한쪽으로 밀어낸 채로 잠을 청했다. 다음 날 아침, 눈을 뜨고 보니 어수선한 내 방의 현실을 부정하고 싶었다. 동묘의 구제시장처럼 방에는 옷들이 산더미처럼 너부러져 쌓여있었다. 교회에 가서 예배드리고 기도하는 중간중간, 산처럼 쌓여있던 옷 이미지가 떠올라 집중하기가 어려웠다. 


집에 돌아와 오후부터 본격적으로 옷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옷걸이와 옷을 분리하고 입을 옷과 버릴 옷을 구분했다. 1년 동안 입지 않은 옷들을 먼저 분류했다. ‘이건 잠옷으로 입을까?’ 하는 티셔츠만 한 무더기였다. 옷을 입었을 때 즐겁고 예뻤던 기억에 버리는 것이 망설여지기도 했다. 베트남에서 사 온 스카프, 태국여행 때 사 온 원피스, 일본 여행 때 사 온 목도리 등 사용하지 않아 비우기로 마음을 먹어도 막상 추억이 담긴 패션 용 품은 비우는 게 어려웠다. 결국, 추억이 깃들어 있는 물품은 시원하게 버리지 못한 채 여전히 행거 안 옷장 서랍 안에 들어 있다. 그래도 비슷한 종류의 옷을 추리고 비워냈다. 다시 행거가 무너지는 대참사를 막기 위해서라도 추리고 추려 비우고 채워 넣으며 주말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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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가 되어 깨끗해진 집 




이사를 하고 조금씩 집을 꾸미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작은 방이지만 짐을 잘 정리하니 점점 지금 사는 방에 정이 들었다. 현관에는 가족, 친구들 과 함께 찍은 사진을 붙여 놓았다. 심심하면 사진 들을 둘러보고, 새로운 사진을 꼽아 두거나 사진의 위치를 변경했다. 이렇게 방 한쪽을 꾸며 놓으니 ‘포토프린터 사도 되지 않을까? 사고 잘 사용 하지 않으면 어쩌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에는 필요하다고 당장 사지 않고 몇 개월을 고민 했다. 벽에 사진을 바꾸고 싶으면 한동안은 포토프린터를 사고 싶은 욕구가 넘쳤고, 그러다 일이 바쁘고 정신없으면 벽에 붙어있는 사진을 들여다 볼 정신도 없어 까맣게 잊고 지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내 생일이 되었을 무렵, 동생이 내가 고민하던 포토프린터를 생일선물로 사준다고 했다. 짐이 늘어나는 것은 아닐까 고민하던 내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나는 좋다며 덥석, 신나게 생일선물을 받아들었다!


포토프린터로 새로 뽑을 수 있는 사진이 많아졌다. 그만큼 벽면에 걸려 있던 사진은 새로운 사진으로 대체되어야 했다. 사진을 교체하는 일은 꽤나 어려운 일이었다. 새로 걸 사진을 고를 때도 고심해서 고르지만, 벽에 걸려 있던 사진을 내리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그리고 그 사진을 버리는 일은 더더욱 어려웠다. 특히 사진은 사람이 나오고 추억이 담긴 물건이라서 더 그랬던 것 같다. 대학교 첫 학기를 마무리하며 찍은 사진, 엠티에서 찍은 사진, 동생들과의 첫 여행 등 막상 사진을 내려놓으려고 하니 선뜻 정리하기가 쉽지 않았다. 걸어 놓을 자리가 없어 매번 고민하며 걸려 있는 사진을 빼야 새로운 사진을 걸 수 있었다. 방 한쪽에 마련된 이 사진 공간이 꼭 나의 작은 방과 같다. 새로운 것을 들이기 위해선 비움이 필요하다. 


이렇게 비우고 또 비우고 살았건만, 비우지 못한 방에서 살고 있다. 이제 다시 새로운 집으로 이사를 앞둔 지금, 나는 내가 갖고 있는 짐 중에 어떤 것들을 비워야 수월하게 이사를 할 수 있을지, 나에게 꼭 필요한 물건들은 어떤 것들인지 다시 고민하는 중이다. 이런 시행착오를 통해 방에 물건을 채울 때, 물건을 비울 때를 생각한다. 내가 좋다고 그리고 필요하다고 물건들을 모았지만, 정작 그 물건들이 떠나갈 때 두 가지 마음이 든다. ‘아 맞아, 나 이거 정말 잘 사용했어!! 그동안 잘 썼다!!’, 또 한 가지 마음은, ‘이거 필요 없었는데 괜히 샀네, 아깝다’이다.


그래도 최근에는 ‘당근마켓’을 자주 이용을 하면서 비움을 통해 약간의 경제적 이득과 나눔을 누리고 있다. 털실, 독서대, 가습기, 물 치실 등, 나눔과 약간의 용돈을 벌었다. 당근마켓을 이용하면 내게 필요 없는 물건이 누군가에게 잘 사용될 수 있다니, 그냥 물건을 버리는 것보다 마음의 부담이 덜한 편이다. 심지어 비움을 통해 소소한 간식비를 벌 때는 비움으로 인한 허전함보다 약간의 소득으로 인한 기쁨이 더 커 설레기도 했다. 당근마켓을 통해 나에겐 필요 없지만 버리기 아까운 물건들을 이전보다 훨씬 즐겁게 비울 수 있게 되었다.


이제 또 이사의 시기가 다가왔다. 이 작고 귀여운 정든 방을 떠나 새로운 곳으로 이사를 한다. 앞으로 한 달 동안, 서툴지만 비우는 일을 또 해야 한다. 물건을 사는 것보다 물건을 비울 때 언제나 더 많은 에너지가 든다. 물건을 사서 사용했을 때의 추억이 떠오르기도 하고, 물건을 잘 사용하지 못해서 비워야 할 경우 약간의 죄책감도 따라오기 때문이다. 이렇게 큰 에너지가 들지만, 물건을 비우는 일은 꼭 필요하다. 물건을 비워야 나에게 더 필요한 새로운 물건을 채울 수 있고, 짐이 된 물건에게 빼앗긴 공간을 다시 찾아올 수 있다. 물 건을 비우면서 물건과 연관된 기억과 생각도 정리할 수 있다. 오히려 비움을 통해 얻는 것이 많았다. 때문에 비움은 에너지가 많이 소모됨에도 불구하고 내게는 꼭 필요한, 중요한 일이 되었다. 앞으로도 나의 공간에 어떤 물건을 비우며 살아 갈지 계속 고민하며 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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