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

<소리>는 ‘수준 높은 수다로 꼬드기고 등 떠미는’ IVF 학사회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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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 2023-06-12 조회2,951회 댓글0건

[소리정음]
오늘 잘 살기 [복되어라, 돌보는 이들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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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https://youtu.be/3qq0xSnci-A 

[소리] 2022 다섯 번째 소리 10+11호(통권264호)에 실렸던 글입니다.





복되어라, 돌보는 이들이여!


작년에 뇌졸중으로 쓰러진 아버지를 방치해 사망에 이르게 한 20대 청년 사건이 알려졌습니다.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청년 혼자서 아버지를 돌보다 생활고를 견디지 못해 발생한 비극이었습니다. 

독박육아, 독박간병 등, 돌봄을 개인이 오롯이 감당하는 현실을 풍자하는 신조어입니다. 

돌봄이 필요한 사람을 돌보는 데는 개인을 넘어서 공동체와 사회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이번 호에서는 돌봄이 필요한 사람들과 그들을 돌보는 이웃들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기가 필요한 계절입니다. 우리 곁에 있는 돌보는 이들을 따뜻하게 안아주세요.


 돌봄의 연대기  





https://youtu.be/3qq0xSnci-A 

오늘 잘 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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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을 잘 살고 있는 우리 딸과 나 
                                                                                                                                                                                            



◆ 문경민(춘천교대95)

교사.  소설가.  제17회  중앙신인문학상에서 단편 소설 「곰씨의 동굴」이 당선되어 등단했다. 

『우투리 하나린』으로 제2회 다새쓰 방정환 문학 공모전 대상을, 『훌훌』로 제12회 문학동네청소년문학상 대상을 수상했다. 

장편 소설 「화이트 타운」으로 2021년 아르코문학 창작기금을 받았고 2022년 9월 「화이트 타운」을 출간했다.
 




2022년 가을. 나는 잘살고 있다. 아내와 딸, 아들은 건강하고 일상은 규칙적이다. 아들 녀석의 학업 성적이 너무 낮아서 탄식할 때가 여러 번이지만 그것 말고는 특별한 문제가 없다. 나는 교사로서의 일과 소설가로서의 일과 남편과 아빠로서의 일을 사랑한다. 나는 초등학교 5학년 담임 교사이면서 학교폭력을 다루는 일을 하는데, 학교 일에서 나 자신이 쓸모 있다는 느낌을 받곤 한다. 그 일을 통해 나는 학교폭력으로 인한,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고통을 줄일 수 있다. 교실에서 아이들과 함께하는 일상도 그럭저럭 살아내는 편이다. 요리도 좀 하는 편인데 아내보다 잘하는 건 확실하다. 퇴근 후의 소설 쓰기에서도 조금씩 성과가 나오는 중이다. 내가 잘살고 있다는 건 이쪽저쪽을 봐도 분명하다.


딸은 중증 자폐 장애가 있다. 진단은 아주 어렸을 때 받았고 당시에는 1급이었다. 딸은 아직도 말을 잘 못 한다. 초등학교 다닐 때는 특수학급과 통합반을 오가며 생활했고, 특수학교에 잠깐 보

냈다가 딸보다 장애 정도가 심한 학생들이 많아서 일반 중학교로 옮겼다. 중학교 때도 개별화 교실과 통합반을 번갈아 오갔고 고등학교 때도 같은 생활로 살아간다. 학교가 끝나면 장애인 활동지원사와 시간을 보내다가 내가 일하는 학교로 오거나 복지관 프로그램이 끝난 뒤 집으로 오곤 한다. 글 쓰는 일을 마치고 늦은 밤 집에 돌아오면 아내와 저녁 시간을 평화롭게 보낸 딸이 한껏 웃는 얼굴로 동동동동 뛰어나와 나를 힘껏 안는다. 우리는 서로를 끌어안고 그야말로 눈꼴신 재회를 한다. 올해 열여덟 살이 된 딸은 내 발등에 자기 발을 얹는다. 나는 딸을 안은 채 뒤뚱뒤뚱 걸으며 거실로 들어선다. 딸은 기쁜 목소리로 말도 안 되는 말들을 힘차게 쏟아놓는다.


“타조 눈 가리면 어때?”


목소리가 보통 아이들과 달라서 귀가 깨질 것 같지만 나는 넉넉히 감내하며 대답한다.


“타조가 싫어해.” 

“타조 입양?”

“아니, 아니, 타조 입장.” 

“타조 입장에서 생각해 봐!” 

“타조 입장에서 생각하면?” 

“타조가 싫겠지”

“너라면 눈 가리면 좋겠냐?” 

“싫겠지!”


이렇게 대답하고 나면 딸은 신나게 웃는다. 그 웃음이 어찌나 청명한지 아무리 지쳤어도 같이 웃지 않을 수가 없다. 매일 반복되는 일상이다. 예전에는 집에 돌아온 뒤 딸과 함께 다음 날 저녁 식사 준비를 하고 반찬도 만들고 같이 놀기도 했는데, 요즘은 게을러져서 소파에 드러눕기 일쑤다. 온종일 동동동동 일하고 밤 열 시 넘어 귀가했으니 누워도 괜찮다고 생각하지만, 딸이랑 뭘 하는 게 좋아서 애써 몸을 일으켜 세우곤 한다.


가끔 중학교 3학년인 아들 녀석이 속을 뒤집어 놓기도 했는데 요즘은 ‘아휴, 나도 모르겠다.’ 하는 마음으로 다 포기했다. 아들 녀석이 좀 큰 탓인지, 포기가 현명했기 때문인지 이제는 예전처럼 아들 녀석을 볼 때마다 속에서 불이 나지는 않는다. 장애가 있는 것도 아니고, 건강하기도 하고, 어쨌든 착한 성품의 아이이니 나중에 뭐라도 하고 살겠지, 하고 마는 것이다.


이 상황에 이르기까지 우여곡절이 많았다. 딸이 장애인으로 살아가는 걸 어떻게든 막아보겠다고 정말 별별 짓을 다 했다. 각종 치료실은 말할 것도 없고 한 달에 수백만 원을 요구하는 한의원도 다녔다. 기치료를 받는다며 김포, 제주도, 사천을 돌았다. 신통력이 있다는 곳에 가서 발 마사지를 정기적으로 받기도 했고 일요일마다 신유의 은사가 있다는 목사님께 안수 기도를 받으러 서울에서 충청도를 왕복한 게 1년 반이었다. 짧은 기간 두 번 단식을 하기도 했는데 그건 정말이지 끔찍한 경험이었다. 어느 것도 딸을 구출하지 못했다. 안 해 본 거라면 굿 정도. 그래, 그 굿이다. Good이 아니라 에헤라디야 오로로로로 하는 굿. 오해하지 마시라. 그건 정말 안 했다.


경제적으로도 어려웠다. 아내가 휴직하고 딸을 돌보는 일에 전념할 때였고 빤한 내 봉급으로는 치료비를 감당할 수 없었다. 딸의 치료를 위해 살던 집을 전세 놓고 작은 집으로 이사했고 적금과 예금과 보험을 다 해약했다. 신용카드 회사에서 입금 독촉하는 전화를 받기도 했다. 월급 받고 신용카드 결제일이 되던 날 잔고가 0원이 되는 통장을 물끄러미 내려다본 것도 여러 번이었다. 한 번은 주방 식탁에서 아내와 돈 문제로 심각한 얘기를 나누었다. 아내가 안방에 들어가기에 조금 있다가 따라 들어가 보았다. 아내는 컴컴한 방 침대에 앉아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조용히 울고 있었다. 내게는 평생 잊지 못할 장면이었는데 신기하게도 아내는 그 일을 기억하지 못한다.


지금 우리의 일상이 별 탈 없이 돌아가는 건 우리가 길고 어두운 터널을 빠져나온 상황인 이유도 있으나 사회의 도움이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고등학교에서 딸을 잘 돌봐주기 때문이고, 딸을 자기 가족처럼 여기고 예뻐하는 장애인 활동 지원사님 덕분이고, 복지관에서 딸에게 맞는 프로그램을 운영해주기 때문이다. 만약 사회적 인프라가 없었다면, 그리고 그 인프라에서 딸과 함께하는 분들이 자신의 일을 대충대충 했다면, 우리는 아마 지금처럼 잘 살지 못했을 것이다. 반면에 딸을 지원한다며 조금만 일하고 돈은 돈대로 다 받고 싶어 하는 사람도 만나곤 했다. 딸을 맡긴 탓에 정말 이건 아니다 싶은데도 억지로 웃으며 감사하다, 잘 부탁드린다, 하고 말했던 적이 여러 번이었다.


딸과 함께 살아오면서 정말이지 많은 사람들의 선의를 경험했다. 직무 범위를 넘어서는 애정을 쏟아준 분들이 많았다. 가끔 반대의 경우도 있어서 어려울 때도 있었으나 살다 보면 그런 일이야 누구에게든 생기기 마련이라고 생각한다. 딸이 초등학교를 졸업하던 날, 4년간 딸을 돌봐주었던 특수 선생님은 얼굴이 빨개지도록 울었다. 딸의 중학교 공익근무요원은 딸이 이해하지 못한다는 걸 알면서도 세 장에 걸친 긴 편지글에 작별 인사말을 담아 보내 주었다. 중학교 졸업식 때 개별화 교실 실무사님은 딸을 끌어안고 잘살아야 한다며 울먹였다. 올해부터 딸을 맡게 된 장애인 활동 지원사님은 내게 가끔 “아버님, 이렇게 허술하시면 효은이 그냥 제가 저희 집에 데려가서 키울까 봐요”하고 말씀하시기도 한다. 그분들을 보며 나는 생각한다. 나도 저분들처럼 나의 일에 최선을 다하고 싶다고. 내가 해내야 하는 일에 진심을 담고 다른 사람들이 기대하는 것보다 조금 더 하는 사람이 되겠다고.


“있잖아. 이게 사실 대놓고 할 말은 아닌데.” 


얼마 전, 아내와 식탁에서 뭔가를 먹으며 꺼낸 말이었다. 아내가 심드렁한 얼굴로 대꾸했다. 


“뭔데? 그러니까 더 궁금해.”


나는 손가락으로 허공을 콕콕 찍으며 말했다. 


“당신이랑 나랑 말이야, 둘 중에 먼저 죽는 사람이 진짜 개꿀이야.” 

“왜?”

“효은이랑 사는 거 좋잖아. 나이 들어서 퇴직해도 효은이랑 같이 잘 살면 그만이고. 할 일이 늘 있다니까? 심심할 수가 없어.”

“그건 그렇지.”

“근데 문제는 우리가 죽고 나서잖아. 효은이 어떡하냐고. 시설에 보내? 아들놈한테 맡겨? 저놈한테?”

“그게 문제지.”

“그러니까 먼저 죽는 사람이 개꿀.” 

“오호! 그건 그렇네.”


아이고야, 이런 대화라니. 이 문제에 이르면 답이 없다. 딸이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고 지금처럼 행복하게 잘 살았으면 좋겠다. 문제는 우리가 죽고난 뒤다. 어떤 사람들은 딸을 독립시켜야 한다고 말하기도 하는데 글쎄, 지금으로서는 상상하기 어렵다. 이 문제에 마주하면 사실상 답이 없어서 천장만 쳐다보게 된다. 천장을 쳐다보면 마음에서 올라오는 소리는 하나. 에라 모르겠다.


에라 모르겠다. 맞다. 딸의 미래를 생각하며 읊조리는 말이 그거다. 딸과 함께 살면서 나는 오늘을 사는 법을 익혔다. 오늘 행복하자. 오늘을 잘살자. 짜장면이 맛있으면 좋아하자. 딸이 치킨을 먹고 

싶다고 한 말이 기뻤으니 마구 좋아하자. 오늘 밤에 쓴 소설의 한 대목이 마음에 들었으면 그걸로 좋아하자. 딸은 너무도 예쁘고 사랑스럽다. 딸이 정한 여러 순서를 하나씩 채워 자정 즈음 잠자리에 들면 딸은 내게 말한다. “이마에 뽀뽀해 주세요.” 나는 매번 벅차오르는 마음으로 딸의 이마와 뺨에 열 번쯤 입을 맞춘다. 그리고 말한다. “잘자. 사랑해.” 딸은 희미한 미소를 지어 보이며 대답한다. “불 꺼 주세요.” 나는 속으로 아싸, 오늘은 끝. 하고는 딸깍 스위치를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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