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들에게 세상의 메시지에 눌리지 말라고 수없이 말해왔지만, 

나조차도 쉽게 떨칠 수 없다는 사실을 절감했다. 

세상은
내가 7년 동안 해온 일을 경력으로 쳐주지 않았다. 

예전에 한 광고를 본 적이 있다. 길에는 선이 그어져 있고, 어떤 사람이 선 밖으로 한 발짝 내딛자 갑자기 세상이 뒤집혔다. 완전히 새로운 세상이었다. 2019년 4월 이후, 내 일상 도 그랬다. IVF를 떠나 세상 속으로 나간다는 것은 이제껏 내가 발 딛고 살던 세상이 뒤집히는 일이었다. 

간사들은 2차 임기가 끝나는 6년차 때 부르 심을 고민한다. 기도 끝에 캠퍼스 간사로서 의 부르심은 끝났고, 이제 세상 속 하나님 나 라로 부름 받았다는 결론을 내렸다. 처음에 는 다른 선택지가 생겼다는 사실에 살짝 설레었다. 마치 무한한 가능성이 내게 열려있는 것만 같았다. 우선 직무를 정하기로 했다. 아무래도 하던 일이 사람과 함께하는 일이었 으니 ‘인사’ 직무가 연결되지 않을까 싶었다. 가능하다면 영리 기업에 취업하고 싶다는 거 대한(?) 꿈도 꾸었다. 

정말 오랜만에 취업사이트에 접속했다. 인사 직무를 검색하니 꽤 많은 공고가 떴다. 그 중 한 곳을 정해 무작정 자소서를 써보기로 했다. 모든 사역을 풀타임으로 소화하면서 없 는 시간을 쪼개 자소서를 완성했다. 이정도 면 꽤 잘 쓰지 않았나 싶어서 살짝 흡족하기 도 했다. 하지만 결과는 탈락. 처음 쓴 것이 니 어느 정도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불합격’ 이라는 단어가 존재에 스며드는걸 떨쳐내 기 위해 애써야 했다. 회사에 다니는 후배에게 자소서를 보여주었다. 후배는 내 자소서의 문제점에 대해 조목조목 짚어 주었다. 빨 간 줄이 쫙쫙 그어질 때마다 내 얼굴도 빨갛게 달아올랐다. 부끄러웠다. 

자기소개서. 그냥 나를 소개하면 될 것 같았던 그것은, 문법과 언어가 따로 있는 완전히 새로운 종류의 글쓰기였다. ‘나라는 존재의 시장가치를 증명하는 글’인 자기소개서의 성 격을 받아들이는 데는 꽤 오랜 시간이 필요 했다. 증명에 대한 압박이 나를 조여 왔다. ‘나이 서른셋에 새로운 일을 시작할 수 있을 까? 뭐라도 경쟁력을 갖추려면 남들처럼 스 펙을 쌓아야 하지 않을까?’ 사역이 끝나고 집 으로 돌아오면 밤늦도록 취업 공고를 들여다 보았다. 어떤 조건을 요구하는지, 지원자들의 통계는 어떤지, 연봉이나 처우는 어떤지... 수없이 스크롤을 내리다 아침이 되어서야 잠 든 날들도 있었다. 캠퍼스 간사로서 최선을 다해 사역을 마무리하고 싶은 바람과 세상에 나를 증명해야 한다는 불안이 중첩된 감정은 수시로 널을 뛰었다. 학생들과 간사들 앞에서는 든든한 모습을 보이다가도 집에 돌아와 혼자 눈물짓는 날이 많았다. 

올해 초 사역을 마무리하고 적당히 쉬다가 본격적으로 취업 전선에 뛰어들었다. 서류를 넣는 족족 ‘불합격’이라는 통보가 날아왔다. 설상가상 코로나19의 여파로 공고도 현저히 줄어들었다. 취업 준비는 멘탈싸움이라는 말 이 피부로 와 닿았다. 사역을 하면서 학생들 에게 세상의 메시지에 눌리지 말라고 수없이 말해왔지만, 나조차도 쉽게 떨칠 수 없다는 사실을 절감했다. 무엇보다 가장 어려웠던 점은 내가 7년 동안 해온 일을 세상은 경력으 로 쳐주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거칠게 말해 간사 경력은 휴지조각에 불과했다. 

2012년 부르심을 받았던 순간부터 사임하기 까지 부르심을 부끄러워 한 적이 없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다 해도 하나님 나라는 내 자부심이었다. 하지만 ‘자소서를 봤는데 요. 그래서 어떤 일을 하신건가요?’라고 묻는 면접관의 질문 앞에선, 결국 ‘불합격’이라는 통보 앞에선, 감정이 무너졌다. 나조차도 그 시간을 사랑할 수 없게 될까봐 두려웠다. 결국 서른 셋 간사 출신인 나에게 ‘영리 기업’, ‘인사 분야’라는 목표가 맞지 않다는 걸 인정 하게 되었다. 내가 걸어온 길을 사랑할 수 없게 만드는 목표는 나를 불행하게 하기에 기꺼이 포기하기로 했다. 나의 경력과 연결되는 비영리 분야로 방향을 전환했고, 계약직으로 입사한 지 딱 한 달이 되어간다. 

“야 너는 하나님이 꼭 책임져 주실 거야. 너를 책임지지 않으시면 누굴 책임져 주시니?”, “우리 간사들이 얼마나 능력 있는데. 당연히 잘 되지.” 이런 말을 종종 들었다. 나의 헌신 과 능력에 대한 위로와 격려의 말들이었지만, 때로는 애써 버티고 있는 나의 모습을 지워버리는 말 같아서 고통스러웠다. 이런 나에게 사임 선배들의 존재는 그저 빛 그 자체였다. 그들은 내 고충을 완벽히 파악하고 있었다. 시간을 내어 밥을 사주고, 위로하고, 괜찮은 공고가 뜰 때마다 공유해주었다. 어떻게 나의 간사 경력을 세상에 통용되는 언어로 치환해야 하는지 직접 이력서와 자소서를 첨삭해주었다. 선배들의 공감과 위로, 현실적 조언이 있었기에 긴 터널 같은 시간을 견 딜 수 있었다. 

일희일비하고, 울고불고, 고통에 허덕이는 시간. 취업 준비는 누구에게나 다 똑같이 고통스럽다. 헌신했다고해서 특별한 은혜가 임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결국 누구나 다 언젠가는 자리를 잡게 된다는 게 하나님의 은혜가 아닐까 싶다. 여기에 실은 나의 이야기 가 그렇게 다가갔으면 좋겠다. 그냥 누구나 다 겪는 어려움을 겪었고, 결국 자리를 잡았더라는, 그런 평범한 은혜가 임했더라는 이 야기. 그래서 오늘을 견디는 당신에게 잔잔한 위로가 되는 이야기이길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