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매거진D]
사랑을 낭비해보는 훈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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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VF:D 뉴스레터 두 번째 이야기 - 드라마와 일상
사랑을 낭비해보는 훈련
한세은 경기남지방회
관계란 내 삶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위급한 상황에서도 해결하는 것보다 주변에 사람이 있는지가 더 중요하다고 말할 정도였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상처를 받기도하고 주기도 하면서 ‘관계는 참 부담스러운 거구나’ 싶은 순간이 많아졌다. 결국 상처받지 않기 위해 스스로 선을 긋기 시작했다.
<사랑의 불시착>에서는 이 선이 눈에 보이는 휴전선이지만, 우리는 보이는 선이 아닌 마음의 선을 그어가며 살고 있다. ‘이 사람하고는 딱 이만큼만’ 그 선 안팎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움직였는지 모른다. 기독교에서 흔히 말하는 ‘그럼에도 사랑하는 것’은 이런 삶이 아님을 너무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그 선을 넘어 관계할 때 받을 상처가 두려운 것도 사실이다. 끝을 알면서도 사랑을 선택한 용기 있는 자들이 이 드라마의 주인공들이다.
<사랑의 불시착>은 타인에게 마음을 드러내 보인 적 없는 재벌 2세 남한 여자 윤세리가 패러글라이딩을 타다가 북한에 ‘불시착’하며 일어나는 이야기이다. 그리고 사랑하는 형을 잃은 상처를 가지고 있는 무뚝뚝한 리무혁 대위를 만난다. 클리셰 요소가 다분한 뻔한 사랑이야기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이 드라마의 매력포인트는 바로 이것이다. 사랑해본 적 없는 여자와 너무 사랑해서 상처를 받을 수밖에 없었던 남자가 만들어내는 사랑이야기.
그저 단순한 사랑이 아니라 다시 의지를 내어 사랑해보기로 결단하는 것이 담담하면서도 용기있게 느껴진다. 자신의 마음을 드러내는 것에 익숙지 않은 두 사람은 서로가 느끼는 감정이 사랑임을 애써 부인한다. 하지만 이내 그 감정을 깨달았을 때 그들은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사랑할 시간이 없었고, 서로의 존재 자체는 이미 불법이기 때문이다. 감정을 묻고 묻으며 지내다 윤세리를 남한의 휴전선 앞으로 데려다 줄 때, 그들은 휴전선을 사이에 두고 그 한 발자국을 두고 망설이다 이내 아낌없이 사랑을 표현한다. 그들 앞에는 헤어짐이 기다리고 있음을 알면서도 말이다.
누군가는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 그들의 사랑에 불을 지폈을 거라 말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들에게도 사랑하지 않을 선택권이 분명히 있었다. 상대에게 나의 마음을 내비추지 않아도 됐을 것이고, 살아온 삶을 공유하지 않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저 다시 남한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만을 목표로 둘 수도 있었겠지만, 그들의 선택은 달랐다. 휴전선 안으로 상대를 들어오게 한 것이 아니라, 자신이 직접 휴전선을 넘어 상대에게 다가간 것이다.
서로의 마음을 확인했어도 헤어져야했던 그 이후, 앞으로의 삶이 불행할거라는 예상과 달리 그들은 전혀 불행하지 않았다. 외로웠지만 각자의 방식대로 서로를 생각하며 하루하루를 보냈고, 서로를 위해 더 열심히 살아내길 결단한다. 이전과는 다르게 사랑으로 가득 찬 풍성한 삶을 살아간다.
n포세대. 포기가 익숙해져가는 세대에 우리가 가장 먼저 놓는 것은 사랑이 아닐까. 눈앞의 현실을 떠올리면 사랑은 내가 누릴 수 있는 게 아니라고 착각하며 말이다. 그리고 현실의 턱 앞에 사랑은 너무나도 불안전하고 욕심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것은 내가 만들어낸 환상일지도 모른다. 그저 상처받지 않기 위해 그어놓은 마음의 선 안에 나를 포장하며 숨기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이것은 연인관계, 가족관계, 친구관계, 심지어는 하나님과의 관계에도 꽤나 큰 영향을 미치고 있을지도 모른다. 내가 안전하게 느껴지는 순간까지만 관계하고, 딱 그만큼만 비추며 상처받기가 두려워 결국 사랑을 포기해버리는 삶. 순간에는 안전하게 느껴질지 몰라도 그 삶이 풍성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그럼에도 사랑하는 것’이란, 상대의 잘못을 너그러이 인정해주며 맞춰가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정확한 답을 내리기에는 정말 많은 시간이 필요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럼에도 사랑’이란, 상대에게 내 마음의 선을 넘어 다가가는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상처받을 수 있고, 위태로울 수 있다. 하지만 그러면 어떠한가. 어떤 것이 더 용기 있는 삶인지를, 그리고 그런 시도가 가져다주는 결과가 얼마나 값질지는 경험해본 사람만이 알 수 있을 것이다. 상처받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풍성한 삶을 살아가기 위해 사랑을 마음껏 낭비해보는 용기를 선택해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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