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정음]
공의로운 하나님, 우리를 보호하소서 [폭력 앞에 선 학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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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 2021 세 번째 소리 06+07호(통권256호)에 실렸던 글입니다.
[폭력 앞에 선 학생들]
▶ 공의로운 하나님, 우리를 보호하소서 _ 익명
▷ 공교육제도 안에서 살펴보는 학교폭력의 의미와 대응 절차 _ 조일육
공의로운 하나님 우리를 보호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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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익명
나는 학교폭력을 당한 아이를 둔 한 아이의 엄마로서 이 글을 쓴다. 그때 우리 아이는 초등학교 4학년이었다. 학기 초가 지나고 얼마 되지 않아, 아들은 자신의 피해를 하소연했다. “엄마, J가 자꾸 나한테 욕을 해.” 시작은 이러했다. 처음에는 한창 커가는 남자아이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작은 갈등이려니 하고 대수롭지 않게 넘어갔다. 그러나 그것은 진짜 서막에 불과했다.
문제가 조금 심각하다고 느낀 것은 욕을 하고 괴롭히는 대상이 우리 아들뿐만이 아니라, 그 반 전체의 평범한 아이들이라는 사실을 인지하면서 부터다. J라는 아이는 어렸을 때부터 태권도를 배워서 그 당시 태권도 시범단으로 활동했던, 소위 주먹이 센 아이였을 뿐 아니라, 어렸을 때부터 사설 영재학원을 다닌 영재반 출신의 아이라고 했다. 또래의 아이들보다 귀 하나는 더 큰, 덩치가 좋고 공부도 잘하는 아이였다. J는 그 또래의 아이들이 어떤 것으로도 이길 수 없다고 생각하는 막강하고 두려운 존재였다.
처음에 나는 아이가 복잡한 싸움에 휘말리지 않기를 바랐고, 초등학교 4학년 아이가 일으킬 수 있는 문제라는 것이 별거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냥 대꾸하지 말고, 그 아이가 시비를 걸어도 피해 다녀. 같이 싸우지 말고….” 나는 고작 이렇게 말했다.
하지만 문제는 그렇게 간단하게 끝나지 않았고, 학기가 지날수록 심각해져 갔다. 아이는 학교를 다녀오면 그 J라는 아이가 오늘 어떤 난동을 일으켰는지, 자신과 다른 아이들을 어떻게 괴롭혔는지를 겁에 질려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J는 자기와 짝꿍을 하고 싶지 않다는 여자아이에게 컴퍼스를 던지기도 했고, 자기 마음에 들지 않는 친구에게 갑자기 의자를 집어 던지기도 했다. 그래서 걸핏하면 수업이 중단됐고, 저지하는 담임 선생님에게 욕을 하거나 침을 뱉기도 했다. 아무도 교실에서 그 아이를 통제할 수 없었다.
담임선생님이 그 아이에게 반성문을 쓰게 하거나, 부모님을 모셔오게 해도 아무 소용이 없었다. J의 부모는 너무나 당당했고, 오히려 담임선생님을 공격해서 담임선생님의 입장이 곤란해지는 일이 다반사였다. 그 부모는 자기 아이를 담임이 미워하고 부당하게 대했다며 교장실이나 교육청에 민원을 넣고 다녔다. 학교 현장에 담임선생님을 보호해 줄 수 있는 교권은 없었다. 교장 선생님도 교감 선생님도, 학교의 그 어떤 권위자도 J 부모의 무례함과 뻔뻔함과 거짓말을 상대할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 학교에서는 이 일을 해결하려고 한다기보다는, 시끄럽지 않기를 바라는 것 같았다.
기가 막혔다. 고작 4학년인 남자아이의 폭력과 악을 막아설 수 있는 방법이 학교에 없다는 사실에 당황했다. 아무도 무서워하지 않는 그 아이는 자신이 그 학급의 왕처럼 굴었다. 대체 열한 살밖에 되지 않은 이 아이는 어떤 아이이기에 이렇게까지 하는 것인지, 이 아이를 키운 부모는 대체 어떤 사람들이기에…. 나는 분노했다.
1학기가 끝나갈 무렵이었다. “나의 아이를 보호해달라”고 주님께 기도하던 어느 날, 갑자기 이게 최선이 아니라는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내 아이가 복잡한 일에 휘말리기를 바라지 않는 나의 이기심과 무관심이 이 상황을 더 악화시키고 있다는 마음이 들었다. 나는 더 이상 내 아이에게 참으라고 말하거나 그 아이의 악행을 무시하라고 말할 수 없었다. 하필 나는 그 학급의 자모 회장이었다. 학기 초에 열린 학부모 회의에서 아무것도 안 하려는 마음으로 ‘학급 어머니회장’란에 이름을 적어낸 것이 자꾸 내 마음을 짓눌렀다.
나는 담임선생님과 이 일에 대하여 논의하기 시작했다. 담임선생님은 공교롭게도 교회를 다니는 신실한 분이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담임선생님은 수척해 갔다. 선생님은 “그 아이를 위해 기도하고 있다”고 하셨다. 그리고 “어떻게든 그 아이를 품고 인내하며 변화시키고 싶다”고 말씀하셨다.
1학기가 끝나갈 무렵, 나는 담임선생님께 말씀드렸다. “선생님, 이 아이를 참아주는 것이 최선이 아닐 수 있습니다. 이 아이로 인해서 두려워 떨고 있는 다른 아이들을 위해서 그 아이를 저지할 수 있는 학교폭력위원회를 열어야 합니다. 그런데 선생님이 정 그러시다면, 저도 1학기는 그냥 지켜보겠습니다. 하지만 2학기에도 계속 이렇다면 제가 나서서 학폭위를 소집하겠습니다.”
그 무렵 일을 쉬고 있어 시간이 많았던 나는 자주 아이들과 가정예배를 드렸다. J를 두려워하는 아들을 위해 기도하며, 성경에 있는 “우리를 보호하시고 지키시겠다”는 약속의 말씀을 찾아서 아이들과 함께 읽었다. 무엇보다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실 뿐만 아니라, 또한 공평하게 다스리는 분이라고 말씀을 전했다. 그리고 그 반에 하나 님의 완전한 통치가 임하기를 아이들과 함께 기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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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학기의 어느 날, 그 아이의 폭력과 거짓말을 더 이상 참아서는 안 된다고 판단한 날에 담임 선생님과 함께 반 아이들을 대상으로 학교폭력에 관한 설문조사를 실시했고, 그 설문 조사지를 가지고 학부모들에게 구체적으로 아이들의 피해 사실을 알렸다. 23명의 아이들 중에서 15명의 아이가 J에게 직접적인 피해를 당했다고 적었다. 이미 알고 있는 사실 외에도 참 많은 일이 있었다.
정말 가슴이 아팠던 것은 J에게 뺨을 맞았다거나 발로 차서 넘어졌다거나 하는, 그런 물리적인 폭력 외에도, 자신이 J에게 괴롭힘을 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하도록 J가 아이들을 협박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선생님이나 엄마에게 말하면 죽여 버리겠다”고 했단다. 열한 살의 그 아이는 이런 협박과 거짓말을 어디서 배웠을까…. 나는 고작 4학년밖에 되지 않은 아이들의 세상에서 일어나는 협박과 폭력과 거짓을 믿을 수 없었고, 참담했다.
우리 아들은 나에게 차마 입에 담기도 힘든, 세상 여러 나라 욕의 뜻을 물었다. J에게 들었다고 하 면서…. 피해를 당한 아이들의 부모 중 열의 여덟은 자신의 아이가 그런 일을 겪고 있는 줄을 알지 못했다. 그럴 리가 없다며 사실을 부정하는 엄마들도 꽤 있었다. 자신은 시끄러운 일에 휘말리고 싶지 않다며 폭력을 당한 사실을 숨기려고도 했다. 이것은 정말 예상치 못한 반응이었다. 그중에 가장 나를 힘 빠지게 하는 부모의 부류는 자칭 신실한(?) 그리스도인들이었다.
“예수님 믿는다고 하면서, 이런 일을 고발하고 용서하지 못하다니요? 예수님이 일곱 번의 일흔 번 이라도 용서하라고 하셨어요. 빨리 용서하시고 학폭위는 없었던 일로 하세요.” 참 기가 막힌 일 이었다. 이것은 개인적인 차원의 보복이 아니고 용서의 문제가 아니라고 아무리 설득하려고 해도 그는 들으려 하지 않았다.
나는 아이들을 이런 식의 폭력에 방치해서는 안 된다고, 이 폭력을 멈추는 일에 부모들이 동참해야 한다고 부모들을 계속 설득했다. 무엇보다 우리 아들에게 무기력과 굴종을 가르치고 싶지 않았다. “힘 있는 자는 그가 악하고 부당해도 어쩔 수 없으니 참아야 한다”고 말하고 싶지 않았다. 나는 아들에게 거듭 하나님은 공의로운 분이라고 말했다. 그러니 두려워하지 말라고….
피해 아이의 부모 중에서 아이의 피해 사실에 분노하며 적극적으로 대응하고자 하는 세 명의 부모들과 함께 나는 J를 상대로 학폭위를 열었다. 학폭위가 열리자 그 아이는 눈에 띄게 조용해졌다. 진심으로 반성을 한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공공연하게 교실에서 난동을 부리던 일이 줄어들었다. 학폭위의 처벌로 2주간의 출석 정지를 받은 아이는 그 뒤로 학교에서 조용해졌다. 듣기로는 J가 뉴질랜드로 유학을 간다고 했다.
그렇게 이 일이 마무리되는가 싶던 어느 겨울날, 나는 경찰서로부터 J의 엄마가 나를 모욕죄로 고발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경찰서에 가서 조사를 받던 날, 나는 분노와 증오심에 몸이 덜덜 떨렸다. 검찰로 넘어간 이 사건이 ‘기소권 없음’으로 결론이 나기 전까지 나는 종종 두려웠고 자주 화가 치밀었다. 분노가 치밀어 오를 때마다 맞고소를 할까도 생각했지만, 거기까지는 가고 싶지 않았다. 내가 만약 맞고소를 한다면, 그 동기는 아마 개인적인 보복이었을 것이므로….
나는 마지막으로 그 사건 이후에 우리 가정 안에서 일어난 변화를 나누고 싶다. 내가 학폭위를 소집하고 주변의 엄마들에게 J로 인한 피해 사실들을 알리고 다닌다는 소식을 들은 J는 미친 듯이 분노하며 아들을 가만두지 않겠다고 위협하며 괴롭혔다. 고작 4학년이었던 나의 아들이 느꼈을 두려움과 고통을 생각하면 아직도 마음이 먹먹하다.
J가 자기를 “죽여버리겠다고 협박하며 쫓아온다”며 다급한 목소리로 엄마에게 전화를 했던 날이 있었다. “엄마, J가 나를 죽이겠대. 나 너무 무서워.” “아니야. 괜찮아. 두려워하지 마. 하나님이 너를 지켜주실 거야. 그리고 무슨 일이 생길 것 같으면 엄마가 바로 달려갈게.” 나는 애써 담담하게 말했지만, 아들이 해를 입을까 봐 사실은 두려웠다. 전화를 끊고 나는 기도했다. 마음은 당장 달려가고 싶었지만, 왠지 그렇게 하지 않아도 될 것 같은 마음이 들었다. 그 대신, 하나님께 우리 아들을 보호해 주시고 찾아가 주시기를, 두려워 하지 않고 담대한 아이가 되기를 기도했다.
학교 수업을 무사히 마치고 돌아온 아들은 나에게 이런 말을 했다. “엄마, 하나님이 나에게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고 하셨어. 괜찮다고….” 그렇게 말하던 아들의 눈이 더 깊어진 것 같이 보였던 것은 나의 착각이었을까? 그 무렵이었던 것 같다. 하나님과 아들의 개인적인 관계가 생긴 것이. 4년이 흐른 지금, 들려오는 소식이 있다. 뉴질랜드에 간다고 했던 J가 다시 돌아와 물건을 훔치고 다닌다고 한다. 주여, 불쌍히 여겨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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