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정음]
하늘을 날며 땅 위의 하나님 나라를 꿈꾸다 [여기에도 우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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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 2019 세 번째 소리 - 06+07호(통권244호)에 실렸던 글입니다.
[여기에도 우리가 있다!]
▶ 하늘을 날며 땅 위의 하나님 나라를 꿈꾸다 _ 임종엽
▷ 빛과 소금으로 살고 싶은 마취과 간호사의 하루 _ 강윤호
▷ 전파에 실어 보내는 마음, 전파를 타고 흐르는 사랑 _ 편유희
▷ 경찰공무원, 특별한 아이들과 동고동락하다 _ 양병윤
하늘을 날며 땅 위의 하나님 나라를 꿈꾸다
아시아나 화물기를 몰던 시절의 모습
◆ 임종엽(외대용인98)
하늘을 나는 직업을 가졌지만 두 딸을 보기 위 해 땅을 딛는 것이 더 행복하다.
김포 한강신도시에서 두 딸을 키우는 성신IVF 아내와 더불어 행복하게,
때론 IVF스러운 진지함으로 하나님 나라를 꿈꾸고 있다.
전국 각지에서 삶을 통해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 가시는 학사님들께 소소한 제 삶을 나누게 되어 반갑고 감사한 마음이 듭니다.
얼마 전 교회에 등록하신 집사님과 대화를 나누던 중 저의 직업을 소개하자 그분의 꿈도 비행기 조종사였다며 매우 반가워하셨습니다. 이처럼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보면 어릴 적 조종사가 되겠 다는 꿈을 꿔봤다는 이야기를 종종 듣게 됩니다. 저도 그렇게 막연히 꿈을 꾸던 어린아이 중 한 명이었습니다. 그 꿈이 어떻게 저에게 현실이 되었는지, 꿈이 이루어진 현재 하나님 나라를 어떻게 꿈꾸고 있는지 부족한 글솜씨지만 나누고 싶습니다.
꿈과 비전
여러분은 파란 하늘을 바라보며 누군가를 그리워하거나 상상한 적이 있으신가요? 1970년대 한창 중동에 건설 붐이 일어났을 때, 저희 아버지께서는 중동에 일하러 가셔서 일 년에 한두 번 정도만 국내에 오셨습니다. 유아기에는 아버지의 부재를 잘 느끼지 못했지만, 초등학생이 되어서는 아버지를 향한 그리움으로 편지를 쓰기도 하고 하늘을 바라보며 아버지가 무얼하고 계실까 그리워하곤 했습니다. 그리고 비행기를 타고 아버지께 가는 상상을 많이 했습니다.
중학생이 되어 잠시 교회를 떠났습니다. 사춘기를 지나며 방황하던 고교 시절, 진로를 한창 고민할 때 어린 시절이 떠올랐습니다. 막연히 조종사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에 공군사관학교와 항공대 학교를 지원했지만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대학 진학 후 패러글라이딩 동아리에 가입하여 잠시 하늘을 나는 자유를 만끽했지만, 대학생활에 대한 불만족으로 한 학기만 마치고 바로 공군으로 입대를 했습니다. 30개월의 군생활 기간 동안 전투기와 조종사들을 보며 꿈에 대해 계속 고민했습니다. 제대 말년에 계획을 세웠습니다. 복학하기 전에 아르바이트로 돈을 모아 어학연수를 다녀오고 대학 졸업 후 대한항공 공채과정에 지원하겠다는 중장기 계획이었지요.
계획의 초기 과정으로 열심히 돈을 모으던 저를 하나님께서는 단기선교로 몽골에 보내셨고, 그곳에서 그리스도인으로 탈바꿈 시키셨습니다. 저의 세상적인 가치관은 모두 무너지고 하나님께 순종하는 시간을 보내며 제가 포기하지 못했던 꿈과 이성교제를 모두 내려놓게 하셨습니다.
꿈과 캠퍼스
아직도 생생합니다. 캠퍼스에서 믿음의 형제자매들과 함께 공동체를 이루어 기도와 찬양으로 하나님 나라를 꿈꾸었던 시간들. 주의 자녀 된 삶을 풍성히 누렸던 은혜의 시간들이었습니다. 많은 캠퍼스 사역으로 분주한 가운데서도 ‘졸업 후 진로’에 대한 고민에 빠져버릴 때도 많았지만,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현재의 시간을 충실히 살아갈 때 미래는 차근차근 준비되어 간다’라는 믿음으로 캠퍼스에 온전히 시선을 돌리곤 했었지요.
마침내 4년간의 캠퍼스 생활을 마무리하고 하나님께서 저에게 주신 전문인 선교의 비전을 어떻게 이루어 갈지 진지하게 기도하면서 조종사 채용에 지원해보기로 했습니다. 졸업 후 본격적으로 준비를 시작했습니다. 매달 진행되는 서류, 수학과 물리, 영어, 신체검사, 시뮬레이션 등의 전형을 힘겹게 준비하며, 한 단계 한 단계 은혜로 통과하였습니다. 최종 면접까지 오르고 ‘여기까지 왔으니 당연히 하나님께서 길을 열어주시겠지’라며 큰 기대를 안고 결과를 기다렸지만 다시 한 번 고배를 마셨습니다. 아마 그 당시 함께 했던 수도권 학사회 지체들의 기도가 없었다면 어둡고 긴 터널을 혼자 외로이 통과해야만 했을 것입니다.
꿈과 현실
조종사 채용의 고배를 마신 저는 수도권 학사회를 통해 연결된 탄탄한 중소기업에 입사하여 IVF 학사로서 재밌고 보람차게 2년 반의 시간을 보냈 습니다. 그러던 중 2008년 새롭게 열린 아시아나 공채과정을 알게 되었습니다. 많은 고민과 기도 가운데 지원했고, 결국 조종사의 길에 들어서게 되었습니다.
비행훈련 과정에는 ‘혼자 비행하여 이착륙하는 과정’ 일명 solo flight이라는 중요한 관문이 있습니다. 자가용 비행기(최초 비행을 배우기 시작할 때 타는 경비행기)를 교관의 동승 없이 혼자 타고 비행했을 때를 지금도 잊을 수 없습니다. 그 좁은 조종석에 홀로 앉아 주체할 수 없이 떨리는 이를 악물고 뜨고 내리기를 세 번 반복한 후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기쁨의 환호를 질렀습니다. 그제야 비로소 홀로 하늘을 나는 자유를 만끽하며 비행기를 조종하는 재미에 푹 빠지게 되었습니다. 1997년 사관학교에 지원하여 고배를 마신 후 12 년만인 2009년에 드디어 꿈꿨던 예비 조종사가 된 것입니다.
입사 후 미국에서 9개월간의 기본적인 비행 훈련을 무사히 마쳤습니다. 에어버스 항공기인 A321 기종을 배정받아 학술, 시뮬레이터, 실제 탑승 교육을 마치고 입사한 지 2년 만에 부기장이 되었습니다. 단거리 항공기인 A321 항공기로 국내 및 중국, 일본, 동남아시아 등지를 다니며 항공사 생활에 적응하게 되었고 3년 정도 지난 후 보잉사의 B747 기종으로 전환 배치받아 승객뿐만 아니라 화물을 나르며 전 세계를 누비게 되었습니다. 장거리 항공기를 타고 태평양과 대서양을 넘나들며 미국과 유럽의 도시들에 자주 머무르다 보니 다양한 경험과 넓은 시야를 갖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화물기를 타며 무엇보다 편했던 것은 항공기를 운항할 때에 조종사 외에는 사람이 없었다는 것입니 다. 사실 우리가 현실을 살아가면서 가정, 직장, 공동체 등지에서 제일 힘든 게 사람과의 관계가 아니겠습니까. 여러분, 속 썩이는 멤버들로 인해 얼마나 긴 고통과 인내의 시간을 보내셨습니까. 그런데 고난의 핵심 요소가 사라지니 얼마나 편했을지 상상이 가시겠죠?
한편 꿈에 그리던 조종사의 삶을 누리게 되었지만 종종 고통과 충격에 휩싸이는 경우가 있습니다. 안전과 관련된 사건사고가 발생할 때였죠. 미국에서는 기상악화로 훈련 중이던 비행기가 추락해 외국인 훈련생이 희생되는 사건도 있었습니다. 회사 안에서도 항공기 화재, 인적과실 등으로 추락 및 충돌 사고를 간접적으로 접했습니다. 특히 조종사의 피로, 항공기의 정비점검 등이 제대로 관리되지 않으 면 사고는 반복된다는 점을 깊이 깨닫게 되었습니다. 항공기 사고는 바로 생명과 연결되기에 매 비행마다 안전을 위해 분별력과 지혜를 주시길 기도하고 있습니다.
꿈과 하나님 나라
2015년 시리아 사태 이후 한창 난민 문제가 전세계적으로 이슈가 되었을 때, 이태리 밀라노로 5일간 비행을 가게 되었습니다. 인터넷 기사를 보던 중 데살로니키(성경의 데살로니가) 지역에서 난민을 돕고 계시는 선교사님이 계시다기에 연락하여 방문하기로 했습니다. 선교사님은 아테네로부터 끝도 없 이 밀려오는 난민 행렬을 바라보며 하나님의 마음 으로 애통해하셨습니다. 그들을 도울 수밖에 없었다는 말씀에 그리스도의 깊은 사랑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또한 공동체와 나누기 위한 자료를 준비하며 유엔 난민기구에서 매주 공개하는 난민들의 이동경로를 살펴보았는데 바울의 선교여행경로와 많이 닮아있어 바울이 목숨 걸고 뿌린 복음의 씨앗이 그들 가운데도 뿌려지기를 간절히 기도하였습니다.
사실 조종사로의 삶을 시작하며 가장 어려웠던 점은 주일성수를 못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해외 체류지에 가게 되면 한인교회들을 찾아 나섰고 평일 예배도 되도록 참석하여 마른땅의 단비와 같은 큰 은혜를 경험하곤 하였습니다. 선교사님들과도 연결이 되어 그분들의 사역을 보고 배우며 정말 다양한 모습으로 하나님의 나라가 세워져 가는 것을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저는 알게 되었습니 다. 세계 각지에 퍼져있는 한인 디아스포라 교회들과 선교사님들이 대한민국과 교회의 어려운 상황과 현실에 대해 깨어서 비통한 심령으로 기도하시며 사역하고 계신다는 사실을요. 그래서 저는 이 나라와 교회의 어려운 환경을 탓하며 비난하기보다 생명력 있게 살아서 역사하시는 그리스도의 복음에 늘 초점을 맞추며 그 삶을 살아내고자 기도하며 노력하고 있습니다.
계속되는 꿈
며칠 전 전화 한 통을 받았습니다. “덕분에 무사히 부기장 임용심사를 잘 마쳤다”는 기쁨에 찬 훈련생의 전화였습니다. 현재 저는 아시아나항공의 자회사인 에어서울에서 A321 항공기의 교관 기장으로 근무를 하고 있습니다. 일반적인 비행업무를 수행 하다가 불과 얼마 전 교관으로 임명이 되었고, 이제는 기장 및 부기장이 되기 위한 조종사를 훈련하는 업무가 주를 이루고 있습니다. 200명의 승객을 태우고 안전하게 비행을 하도록 조종사를 양성하는 일은 참으로 부담스러운 일입니다. 안전을 위해 제정된 국제 및 한국의 항공 관련 표준, 항공사의 운영기준 등을 각자 다른 성향을 가진 사람들에게 저마다의 다른 접근 방법으로 교육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죠. 또한 훈련 진도를 잘 따라오지 못하여 뒤쳐지는 예비 조종사들을 보면 마음이 많이 아픕니다. 본인의 의지나 뜻과는 다르게 회사가 요구하는 기준에 부합하지 못해 종종 심의위원회를 거쳐 훈련 도중 하차하는 경우가 발생하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훈련 조종사들을 하나님의 사랑으로 품고 이들이 어려워하는 부분을 잘 파악하여 도움을 주는 교관이 될 수 있도록 날마다 하나님께 엎드릴 수밖에 없습니다.
저는 지금도 선교의 비전을 꿈꾸며 선교사님들과 네트워크를 맺으며 기도하고 있습니다. 유럽과 미주의 난민들을 통해 중동의 무슬림들이 변화되는 이야기, 그리스의 집시족들이 복음에 열정을 갖고 살아가는 이야기, 필리핀의 소외받는 장애 아동들이 사랑의 돌봄을 받고 꿈을 꾸는 이야기 등은 저에게 하나님의 나라를 꿈꾸게 하며, 저를 다시 오실 그리스도를 기대하고 준비하는 삶으로 초대하고 있습 니다. 아직 구체적인 모습은 결정하지 못하였지만 해외로 이직을 하든 한국에 남아있든 선교적 공동체와 함께 동역하며 선교적 삶을 살아내길 소망하고 있습니다.
부족한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같은 마음으로 캠퍼스에 하나님 나라를 꿈꾸며 살아온 학사님들이시기에 편안한 마음으로 삶을 나눌 수 있었습니다. 저 또한 학사님들의 귀한 삶을 통해 세상 가운데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질 것이 기대됩니다. 늘 강건 하시길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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