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정음]
빛과 소금으로 살고 싶은 마취과 간호사의 하루 [여기에도 우리가 있다]
관련링크
본문
[소리] 2019 세 번째 소리 06+07호(통권244호)에 실렸던 글입니다.
[여기에도 우리가 있다!]
▷ 하늘을 날며 땅 위의 하나님 나라를 꿈꾸다 _ 임종엽
▶ 빛과 소금으로 살고 싶은 마취과 간호사의 하루 _ 강윤호
▷ 전파에 실어 보내는 마음, 전파를 타고 흐르는 사랑 _ 편유희
▷ 경찰공무원, 특별한 아이들과 동고동락하다 _ 양병윤
빛과 소금으로 살고싶은 마취과 간호사의 하루
◆ 강윤호(한림대12)
작년에 갓 대학을 졸업한 사회초년생으로 현재 마취과에서 간호사로 근무하고 있습니다.
그날도 어김없이 당직실 소파에 기대어 오지 않는 잠을 청하고 있었다. 저편의 수술실에는 싸늘한 무거움이 깔려있었고, 이따금 창밖 너머 들려오는 자동차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불현듯 가슴팍에서 진동이 울리기 시작해 나는 덮고 있던 담요를 뒤척이며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핸드폰의 시린 불빛이 안경에 반사돼 어두운 방 안 저편까지 뻗어나갔다. 나는 발끝으로 애써 크록스를 찾았다. “윤호 쌤. NS 응급 12번 방에서 5분 내 로 올라올 것 같은데….” 피로에 찌든 목소리였다. 이내 엄지발가락에 물컹한 크록스의 감촉이 전해졌다. 직감적으로 새벽이 다 가기 전까지 고요는 없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오늘도 어김없이 주께서는 내게서 이 잔을 거두어주지 않으셨구나.
응급실에서 급하게 올라온 환자의 얼굴은 어딘가 에 부딪혀 피딱지가 앉아있었고 가까이 다가가자 불쾌한 술 냄새가 허파에 들이찼다. 괜히 손이 떨렸다. 재빠르게 환자의 이름을 확인했으나 입원 팔찌에는 원래 그 사람의 이름인 양 ‘무명남’이라는 세 글자만이 당당하게 적혀 있었다. 환자를 태운 스트레처카가 무서운 기세로 수술실 입구를 지나쳐갔다. 찰나의 순간이 지나고 환자는 여러 손에 의해 들려 수술대로 옮겨졌다.
나는 한 손으로는 각종 모니터링 장치를 붙이면서 다른 한 손으로는 마취과 레지던트에게 전화를 걸었다. “선생님. 환자 들어왔어요.”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붉게 충혈된 눈의 익숙한 얼굴이 들어섰다. “어서 약부터 재주세요.” 87/53이었던 혈압은 54/32까지 그야말로 바닥 없이 내려갔다. 머릿속은 멍해지고 몸은 붕 떴다. 아찔했다. 오금이 저려왔다. 급하게 약을 재려다 주삿바늘로 내 손을 찔렀고 억누르기 힘든 감정이 새어 나왔다. ‘주님. 부디 제가 감당할 수 있는 시련만 허락해주세요.’ 가슴 속으로 나지막이 되뇌면서 이를 악물었다. 우리는 그렇게 떨리는 마음을 다잡고 담담하게 해야 할 일들을 하나씩 해나갔다. 빠른 속도로 마취를 진행한 후 기관 내 삽관을 마쳤다. 또한 수술 중에 환자 상태를 보다 더 정확히 확인할 수 있도록 동맥 라인을 잡고, 대량 수혈을 위한 중심정맥관까지 확보했다. 그러는 중에도 각종 약물을 지속적으로 주입할 수 있는 시린지 펌프를 달고 섬세한 손길로 주입 속도를 조정했다. 너무 약이 많이 들어가면 혈압이 치솟고 살짝만 줄여도 지나치게 떨어진다. 주입 속도를 조금씩 올렸다가 서서히 줄여가면서, 거센 파도를 만난 것처럼 흔들리는 환자의 상태가 물살에 휩쓸려 떠내려가지 않도록 붙잡아 놓았다.
다행히 수술이 진행되면서 환자의 상태는 안정을 찾기 시작했다. 잠깐 숨을 돌렸다. 그제야 시야가 넓어지면서 방 안의 풍경이 들어왔다. 두개골을 뚫는 드릴의 소리가 귀를 어지럽히고, 피와 살이 타는 냄새가 의료진들이 내뿜는 열기와 맞물려 기묘한 소용돌이를 만들고 있었다. 몇 시간 동안 이어졌던 수술 끝에 거칠기만했던 집도의의 입에서 안도의 한숨이 들리고 차갑게 굳어진 표정들이 웃음으로 데워진다. 한시도 앉지 못하고 계속 서서 뛰어다니느라 부은 발을 지그시 누르며 그 웃음에 동참했다. 동틀 무렵 환자는 무사히 중환자실로 떠났다. 다시금 수술실에는 적막만이 스멀스멀 차오르고 홀로 남겨진 나는 묵묵히 그날 밤의 흔적들을 지워나갔다.
기쁜 마음으로 병원 문을 두드리는 이들은 극히 드물 것이다. 사람들이 병원을 찾을 때에는 대체로 자신의 생애 최악의 날을 경험하게 된다. 나 또한 그런 사람들 중 하나였다. 한창 대학 입시와 진로를 고민하던 시기에 외할아버지께서 심근경색으로 쓰러지셨고 지금 내가 다니고 있는 이 병원 응급실로 급하게 옮겨졌다. 소중한 사람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공포, 구겨진 얼굴과 밤새 이어지는 신음 소리. 그 속에서 나는 너무나도 무력했다. 응급실 한 구석에서 뜬 눈으로 밤을 지새우면서 나는 한 가지 결론에 다다랐다. 세상에는 사람이 좇을 수 있는 수많은 가치가 있지만 지금과 같은 순간에 쓸모없는 가치는 헛된 꿈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나는 어떤 삶을 살아야 할까? 내 삶의 마지막 순간, 내가 정말로 원하고 간절히 바라는 것은 무엇일까? 바로 손이었다. 떨리는 내 손을 진심을 담아 잡아줄 수 있는 손. 그렇다. 사람이 병들고 죽어갈 때 그 떨리는 손을 잡아 주는 것. 이야말로 인간이 추구할 고귀한 가치이며 이를 위해선 먼저 나 자신부터 그런 존재가 되어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한 때 무역학과를 지망했던 나는 이렇게 지금까지 내가 추구했던 것을 비우고 간호학과에 입학하게 되었다.
굳은 마음을 먹고 지금까지 간호사의 길을 걸어오고 있지만 그 길이 결코 순탄치만은 않았다. 어렵사리 직장을 잡았을 때만 해도 ‘비로소 주님의 도구로써 이 땅을 밝힐 수 있겠구나’라는 행복감에 의기양양했다. 하지만 입사한 지 채 하루도 되지 않아서 나는 정말 내가 이곳에 필요한 존재인가를 자문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행동이 굼뜨고 느렸다.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고자 노력했지만 도움은 커녕 방해만 됐다. 분명 학교에서 많은 것을 배운 것 같았는데 이곳에서는 완전한 백지상태로 다시 시작해야 했다.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극도의 긴장이 멈추지 않았고 긴장하면 할수록 말도 안 되는 실수들이 생겼다. 무엇보다도 그런 나를 선배들은 기다려주지 않았다. 자신의 몫을 해내기도 어려운 열악한 환경 속에서 사람들은 날이선 듯 한껏 예민했다. 나는 그 날 선 칼날 위를 어지러이 맴도는 하루살이와 같이 하루하루를 보냈다. 첫 3개월간 10kg가량 체중이 줄었다. 계속되는 스트레스에 밥이 목으로 넘어가지 못했고 가끔씩 구토가 올라왔다.
잠 못 드는 수많은 밤이 지나고 일이 어느 정도 손에 익기 시작하자 이번에는 또 다른 시험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바로 환자가 미워지기 시작한 것이다. 다른 누구보다도 그들의 아픔을 잘 안다고 생각했지만 그 모든 것들을 품기에 나는 너무나 연약했다.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나는 조금씩 부서져 내렸다. 퇴근길에 진이 다 빠져 터덜터덜 가로등 사이를 지나갈 때면 ‘이런 마음 로 무슨 간호사를 하겠다는 건가. 환자가 싫은 간호사라니’라는 마음이 들어 도저히 나 자신을 용서할 수 없었다. 간절한 마음으로 주님께 제발 이 잔을 거두어 달라고 수없이 갈구하였다. 그럼에도 주님은 기도하면 기도할수록 더 힘든 상황 속으로 날 던지셨다. 언제부터였을까 내 방에서 기도 소리가 멈췄고 날마다 읽던 성경책 위로 먼지가 내려앉기 시작했다.
별다른 대안이 없기에 하루하루 버틸 수밖에 없는 삶. 그 삶 속에서 나는 먹고사는 데는 선악이 없으며 그저 비정한 에고이즘만이 존재한다고 믿었다. 나는 주님의 자리에 황금송아지를 세웠 다. ‘돈만 있었어도 이 지긋지긋한 일 따위 진작에 그만두었을 텐데.’ 물질은 보는 이로 하여금 빨려 들어가게 할 만큼 묘한 매력을 내뿜었다. 그 마법과도 같은 힘은 내 삶이 온전히 내 것이 라는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그간 품었던 마음의 갈등들이 눈 녹듯이 사라졌다. 더 정확히 표현하자면 아무런 생각을 하지 않게 되었다. 그저 습관처럼 출퇴근을 반복했고 가끔씩 쉬는 날이면 공허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 욕구가 이는 대로 하고 싶은 것들을 하면서 살았다. 작은 일에도 쉽게 화를 냈고 늘 불평했다.
그러던 어느 날, 학부 시절 캄보디아로 같이 의료선교를 떠났던 선배 학사님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학사님께서는 잘 지내냐는 말과 함께 여러 장의 사진들을 보내주셨고 나는 그 사진들을 보면서 아련한 추억 속으로 빠져들었다. 푹푹한 열대야의 습기가 전신을 감싸고 하늘의 달과 별만이 어두운 밤하늘을 밝히던 땅. 모든 것이 부족하고 열악했던 그곳에서 우리는 하루에도 수백 명의 환자들을 보았고, 입이 마르도록 주님이 오셨다는 기쁜 소식을 전했다. 새벽같이 일어나 그날의 사역을 준비했고 해가 저물면 선교원으로 돌아와 함께 기도하고 예배를 드렸다. 신기하게 전혀 피곤하지도 지치지도 않았다. 오히려 알 수 없는 뜨거운 열정이 무서울 정도로 고동쳤다. 내 영혼의 불결한 건더기가 씻겨 내려가고 날마다 새로운 설렘으로 우리를 찾아올 사람 들을 기다렸다. ‘우리가 한 몸에 많은 지체를 가졌으나 모든 지체가 같은 기능을 가진 것이 아니니 이와 같이 우리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되어 서로 지체가 되었느니라.’ 로마서 12장의 말씀처럼 우리는 각기 다른 입장과 위치에서 오로지 하나님 나라를 위해 우리 자신 을 내어 놓았다.
문득 ‘그곳과 이곳이 무슨 차이가 있느냐’라고 주님께서 나지막이 물으셨다. ‘지금 네가 서 있는 이 병원 병실 한 편에도 고통 받고 소외되는 이웃들이 있는데 어째서 너는 눈을 감고 나를 모른다고 하듯 그들 또한 모른다고 외면하느냐.’ 주님께서 나로 인해 울고 계셨다. 무엇인가 중요한 것을 잃어버린 공허함이 나를 에워쌌다. 이곳이 지옥이구나. 내가 이곳을 지옥으로 만들었구나. 일그러진 눈가에 그간의 게으름과 이기심이 고여있었다. 한 번 터져 나온 울음이 멈추지 않았다. 그동안의 시간들을 게워내듯 울고 또 울면서 주님께 회개했다.
나는 아직도 캄보디아 열대의 냄새를 꿈꾼다. 가끔씩 길을 잃고 방황할 때면 그날의 경험들을 되새기며 길을 찾아 나선다. 늘 내 삶 속에서 함께 하시는 주님의 인기척을 느끼고 있다. 간호학과에 입학하게 된 것도, IVF에 들어오게 된 것도, 이 병원에 온 것도 어찌보면 나도 알 수 없는 주님의 거대한 계획 가운데 있을 것이다. 그 계획 속에서 빛과 소금처럼 주님의 도구로 쓰일 수 있기를 기도한다. 그리하여 마지막 날 홀로 주님 앞에 나아가 내 부끄러운 영혼을 내어드리며 어색하게나마 웃음 지을 수 있기를 바란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