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정음]
통근시간이 일상의 행복에 끼치는 영향 [서울 중심 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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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 2022 세 번째 소리 08+09호(통권263호)에 실렸던 글입니다.
서울 중심 대한민국
최근 <나의 해방일지>라는 드라마가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경기도에 살면서 서울로 출퇴근하는 등장인물들의 고충에, 많은 경기도 주민들이 공감을 표하며 화제가 되었던 드라마입니다.
통계청 인구조사에 따르면, 서울의 인구밀도는 1㎢당 15,839명으로, 2순위인 부산(1㎢당 4,248명)의 약 4배에 이릅니다.
서울에 많은 인프라와 일자리, 문화, 교육 면에서의 혜택이 집중되어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서울 중심으로 돌아가는 ‘서울민국’은 지방과의 격차를 더욱 벌리며 불평등한 상황을 강화하고 있습니다.
실제 어떤 불평등한 일들이 일어나고 있으며 우리 삶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서울 중심 대한민국에 사는 우리네의 이야기를 들어보겠습니다.
▶ 통근시간이 일상의 행복에 끼치는 영향 _ 연응찬
통근시간이 일상의 행복에 끼치는 영향
pixabay.com
◆ 연응찬(홍익대04)
숙명여대 04학번 이명화와 결혼하여 현재 9살, 5살, 3살의 귀여운 공주들과 함께 살고 있다.
취미이자 특기는 이직, 어느덧 ‘프로이직러’ 생활을 10년째 하고 있다.
이제는 이직을 넘어 생계를 진지하게 고민하는 단계.
인천에서 서울까지
출근길이다. 강남으로 가는 9호선 급행열차가 서서히 다가온다. 안전선 뒤에 4열로 줄 서 있던 사람들이 어느새 한 덩어리가 되어 스크린도어가 몸에 닿을 정도로 바짝 다가선다. 문이 열린다. 운 좋게 맨 앞줄에 서 있던 나는 후다닥 뛰어들어가 0.5초 만에 빈 좌석을 눈으로 훑는다. 그리고 재빠르게 지하철 퍼스트 클래스인 양측 가장자리 좌석 중 하나에 골라 앉는다. 이제 회사까지 음악이나 들으며 잠이나 자야지 싶은 생각에 이어폰을 빼 드는 순간, 갑자기 시퍼런 색감의 낯선 물체가 시야를 덮친다. 곧 내 무릎에 그 물체의 무게감이 전해진다. 맙소사! 뒤에 서있던 여성이 내가 앉은 자리를 향해 다짜고짜 엉덩이부터 내밀고 앉아 버린 것이다. 그 여성은 화들짝 놀라 일어난 다음 민망했던지 사람들 틈을 비집고 멀리멀리 사라져 버렸다.
매일 펼쳐지는 평일 7~9시 사이 김포공항역의 풍경이다. 쿼드러플 역세권인 김포공항역에서 출발하는 9호선 열차는 김포와 인천 서구에 거주하는 시민들이 강남으로 출퇴근할 수 있는 유일한 지하철이다. 지금은 6량이 되었지만 내가 다닐 때만 해도 4량이었던 9호선 급행열차는 서울 한강 이남 지역을 서에서 동으로 가로지르는 열차 치고는 칸수가 너무 적어 언제나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뤘다. 서울 중심으로 가는 열차답게 정차할 때마다 밀려들어오는 사람들로 인해 안 그래도 좁은 열차 안에서 서로의 땀과 열기를 참아가며 40여분의 지옥을 참아야 한다. 그러니 어떻게든 엉덩이를 들이밀고서라도 자리에 앉으려는 진풍경이 벌어지는 것이다.
인천에서 서울 논현까지 1시간 반 거리를 이렇게 매일매일 출근했다. 논현에서 인천으로 되돌아가는 퇴근길은 되려 2시간으로 더 늘어났다. 강남 에서 집으로 가는 퇴근객들에게 밀려 지하철을 2번 정도는 고스란히 보내야 했기 때문이다. 직군이 영업이라 자차를 갖고 출근할 때는 더 고역이었다. 꽉 막히는 올림픽대로 안에서 2시간은 견뎌야 겨우겨우 회사에 도착했다. 눈이 올 때는 3시간이 넘게 걸린 적도 있었다.
회사에는 나와 같은 장거리 통근족이 적지 않았다. 일산에서 오시는 분들은 나보다 30분은 더 걸렸고 이분들은 아예 새벽에 출근했다. 하루 왕복 80km를 일산에서 오가는 영업직군은 유류비만 족히 25만 원은 썼을 것이다. 나고 자란 곳이 서울인 동료들은 이런 출퇴근 시간을 이해하지 못했다. ‘기껏해야 door to door로 30분이면 오갈 거리인 회사를 1시간 반에서 2시간이나 걸려 온다고?’ 악의는 없겠지만 그들의 말과 눈에서는 한결같이 ‘세상에 이런 일이?’라는 메시지가 뿜어져 나왔다.
위 자료는 <2020인구주택총조사 수도권 통근 흐름>에 관한 이미지이다. 인천과 경기도에서 서울로 출퇴근하는 사람들은 129만 명인데, 서울에서 경기도나 인천으로 출퇴근하는 사람은 53만여 명밖에 되지 않는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서울에 주요 직장이 몰려 있고 주거비는 비싸니 계란으로 치면 흰자 땅인 인천과 경기도에 거주하며 생계를 위해 왕복 4시간을 감내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삶이 만족스러울 리 없다. 아래 <한국고용정보원> 자료를 보면 통근시간과 직장만족도는 반비례하고 이직 의사는 비례하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나 역시 장거리로 통근했던 당시 6시에 칼퇴근을 해도 집에 오면 8시인 경우가 태반이었다. 그 시간에 저녁을 먹으니 살도 찌고 밤에 속도 불편했다. 늘 컨디션이 최악인 상태로 회사에 다녔던 기억이 난다. 당시에는 몰랐지만 출퇴근으로 인한 체력소모가 상당했다. 그런 상태의 남편과 아빠를 상대해야 하는 가족도 고역이라 퇴근 후 소파에 누워있는 나를 가족들은 어쩌지 못했다.
서울 중심의 불균형을 해결해줄 디지털 노마드
그런데 이러한 장거리 출퇴근족들의 삶에 변화를 준 사건이 생겼으니 바로 ‘COVID19’로 촉발된 사회적 거리두기다. COVID19는 재택근무라는 사회적 방향성을 반강제적으로 속도감 있게 구현해낸 원인이 되었다. 대다수의 회사들, 특히 사람이 많이 모이고 몰리는 유통회사부터 앞장서서 재택근무를 시작했다. 홈쇼핑 특성상 방송 전에 대면으로 만나 제품을 만져보고 특장점에 대해 설명을 듣는 시간이 꼭 필요한데, 이마저도 원격으로 회의를 진행했다. 방송 전에 쇼호스트의 코로나 확진으로 스튜디오가 폐쇄되기까지 하는 상황이 도래했으니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대기업들도 일주일에 2~3회 재택을 권장했고 일부 외국계 회사는 COVID19 기간 내내 재택지침을 내려 1년간 회사에 한 번도 나오지 않은 직원들이 있을 정도였다.
놀라웠다. 2017년 한 강의에서 ‘디지털 노마드(Digital nomad)’란 정의에 대해 처음 들었던 기억이 난다. ‘디지털(Digital’)과 ‘유목민(nomad)’을 합성한 신조어인데, 말 그대로 인터넷 접속을 전제로 디지털 기기를 이용해 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고 재택과 이동근무를 하면서 자유롭게 생활하는 사람들을 뜻하는 말이다. 강사는 중국에서 유학한 이후 서울의 작디작은 월세방에 살며 콩나물시루보다 빽빽한 지하철 통근길이 인생에서 제일 힘든 경험이었다고 했다. 그리고는 워킹 홀리데이로 떠난 호주에서 근무일의 절반을 재택 근무하며 다양한 글로벌 인재들과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되었다는 이야기였다(도유진, 『디지털노마드』, 남해의봄날). 당시 강의를 들었을 때 우리나라에서는 말도 안 되는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한국이 아무리 디지털 강국이라도 사람들의 고정관념은 절대 변하지 않기에 회의는 무조건 만나서, 근무는 팀장이 보는 앞에서 해야 직성이 풀리는 대한민국 직장생활 문화는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믿었다.
그런데 COVID19는 이 모든 것을 강제적으로 변화시켰다. 그리고 COVID19가 우리 삶에 (안 좋은 의미로) 영향을 주었듯 재택근무 또한 우리 삶에 또 다른 변화를 일으켰다. 대다수 회사들이 원격이 가능한 소프트웨어 기술들을 통해 화상으로 회의를 진행하기 시작했고 회의 자료도 화면으로 공유하며 소통에 문제가 없음을 경험하기 시작했다. 회사라는 공간으로 모이는 가장 큰 이유는 함께 모여 일하기 위함인데 그것이 디지털로 대체 가능하다는 경험을 처음으로 하기 시작한 것이다. 심지어 회식 또한 화상으로 하기 시작했다. COVID19가 한창일 때 이직한 현재 회사에서도 환영회를 원격으로 했고 간담회나 런치 미팅도 원격으로 진행했다. 심지어 어떤 동료는 COVID19가 극성이었던 2021년 봄에 아예 지인이 아는 농장에서 몇 개월간 피난살이를 하며 근무했는데 업무적으로 전혀 문제가 없었다고 했다.
출퇴근 횟수와 출근 시간에 제약 받지 않는 삶은 업무적으로도 개인적으로도 더 풍족한 삶을 선사했다. 내 경우도 재택근무를 하며 아이 셋의 등하원이 가능해지자, 아내가 일을 할 수 있게 되었다. 흐드러지게 늦잠을 잘 수도 있게 되었고 6시에 칼퇴근하고 방문을 열면 아내와 아이들이 거실에서 쫑알거리는 모습을 바로 볼 수 있게 되었다(이건 장점인지 단점인지 아직은 모르겠다).
물론 재택근무는 파라다이스가 아니다. 단지 정해진 공간으로 출퇴근을 하지 않을 뿐이다. 내가 원하는 공간에서 일하는 만큼 더 많은 책임감과 자기관리가 필요하다. 그럼에도 이미 인재들은 연봉이나 복지 못지않게 재택이나 유연근무 제도를 채택하고 있는 회사인지의 여부가 입사를 결정짓는 데에 중요한 척도가 되었다. 실제 내가 아는 메이저 유통사 MD도 재택근무와 유연근무를 한다는 이유로 과감히 이직한 경우를 봤다. 최근 ‘카카오’와 ‘라인플러스’, ‘우아한 형제들’ 등 IT기업들이 속속들이 재택근무, 주4일 근무, 해외 원격근무 허용 등을 발표하면서 세간에 부러움과 놀라움을 산 일은 모두 알고 있을 것이다. 물론 직군마다 재택근무가 불가능한 곳도 많기에 이런 내 의견이 다소 일방적일 수 있으나 대다수에게 이 지옥 같은 통근시간을 해방시켜 줄 수 있는 현실적 대안은 여전히 재택근무라고 생각한다. 살인적인 서울의 주거비와 교통 혼잡, 그로 인해 생기는 각종 사회적 비용 등을 생각하면 더더욱 그렇다.
새로운 삶으로의 변화를 꿈꾸며
예전에 호기심으로 내 통근시간이 인생에서 어느 정도 차지하는지 계산해 본 적이 있다. 하루 24시간 중 왕복 통근시간이 4시간이면 1년으로 환산 시 1,460시간이고, 30년 근무 시에 43,800시간이나 된다. 이는 내 인생 30년 중 5년에(17%비중) 해당할 만큼 큰 시간이다. 아직도 이렇게 출퇴근하는 분들이 많다. 몇십 년 걸리는 GTX가 그물처럼 깔리면 해결될까? 지역균등 발전이 되면 가능할까? 어느 세월에? 그사이에 우린 노인이 되어있을 것이다. 내가 사는 곳이 나의 품격을 말하는 곳이 되어버린 이 시대에 눈에 불을 켜고 서울 입성을 꿈꾸는 게 근본적인 해결책일까? 중요한 것은 새로운 삶의 방식이다. 삶의 방식이 바뀌면 그것이 길이 되고 문화가 되고 변화가 된다. COVID19는 그런 삶을 잠시나마 꿈꾸게 해줬다(난 COVID19 예찬론자가 아니다 절대!).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올해 3~4월 엔데믹으로 전환되며 기업들이 다시 사람들을 회사로 불러들이고 있다는 점이다. 안착하였던 것 같던 재택근무는 다 사라지고 모두를 예전의 일상으로 돌려놓았다. 간혹 인사팀이 30% 재택근무 방침을 권고한다 해도 부서장 재량이기에 대다수가 회사에 나오고 있다. 꿈꾸었던 변화는 아직은 이른 것이었을까? 재택근무가 한창이던 때, 일산에서 강남으로 2시간 이상 출근하던 이사님이 40분 만에 회사에 왔다며 싱글벙글하던 얼굴이 갑자기 왜 생각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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