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정음]
보호와 돌봄을 넘어서야 할 때 [복되어라, 돌보는 이들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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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 2022 다섯 번째 소리 10+11호(통권264호)에 실렸던 글입니다.
복되어라, 돌보는 이들이여!
작년에 뇌졸중으로 쓰러진 아버지를 방치해 사망에 이르게 한 20대 청년 사건이 알려졌습니다.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청년 혼자서 아버지를 돌보다 생활고를 견디지 못해 발생한 비극이었습니다.
독박육아, 독박간병 등, 돌봄을 개인이 오롯이 감당하는 현실을 풍자하는 신조어입니다.
돌봄이 필요한 사람을 돌보는 데는 개인을 넘어서 공동체와 사회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이번 호에서는 돌봄이 필요한 사람들과 그들을 돌보는 이웃들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온기가 필요한 계절입니다. 우리 곁에 있는 돌보는 이들을 따뜻하게 안아주세요.
보호와 돌봄을 넘어서야 할 때
장애인 예산 삭감에 반대하며 권익옹호 활동을 펼치는 센터 사람들
◆ 오한샘(인제대07)
진로에 대한 특별한 고민 없이 생명공학과로 입학했다가 선배를 통해 IVF를 알게 되었고,
의학전문대학원을 준비하는 학과 분위기가 생각했던 것과 전혀 달라 사회복지학과를 복수전공하여,
두 가지 학사 학위를 가지고 있는 특이한 이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장애인자립생활센터
저는 현재 서울시 은평구에 위치한 ‘은평장애인자립생활센터’라는 비영리단체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생소하시겠지만 장애인자립생활센터라고 하는 곳은 장애인 당사자의 자립 지원과 권리 향상을 목표로, 장애인의 권리를 옹호하고 지역사회에서 정책적 요구 활동을 하거나 인식개선캠페인 등을 진행하는 ‘권익옹호 활동’과 장애인 당사자 개개인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한 ‘개인별자립지원’, 장애인의 활동을 지원하는 활동지원사를 중개하고 관리하는 ‘장애인활동지원사업’, 탈시설 장애인들의 지역사회 자립 준비를 돕기 위한 ‘장애인 자립생활주택’ 등의 사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저는 현재 장애인 자립생활주택 운영과 권익옹호 활동을 주로 담당하고 있습니다. 권익옹호 활동의 일환으로, 언론에서도 많이 언급되고 있는 서울시 지하철 장애인 이동권 투쟁을 전국 장애인차별철폐연대와 함께 하기도 하였습니다.
장애인에게 권리란
IVF 공동체에 있을 때 사람들은 진로, 신앙, 이성교제, 군대 등 다양한 주제로 고민했습니다. 혼자 기도하며 고민하거나 다른 사람과 나누며 의견을 모으기도 하고, 그후 결정을 내리고 행동으로 옮겼습니다. 저 또한 많은 고민이 있었습니다. 당시 간사님이 “그렇게 치열하게 고민하고 기도하는 일들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대학생과 청년의 특권”이라고 하셨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우리가 흔히 겪는 고민과 선택, 결정이 장애인들에겐 당연하지 않았습니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대한민국의 장애인들은 ‘보호’라는 명목으로 사회와 분리되어 평생 시설에서 지내며 권리가 무엇인지도 모르고 살았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권리는 뭔가 그럴듯하고 무거워 보이는 게 아닌 단순한 것에서 시작합니다. 생활시설(거주시설)에 소속된 장애인에게는 저녁에 뭘 먹을지, 이따가 어디에 갈지, 차를 탈지 걸어서 갈지, 어떤 핸드폰을 살지 같은, 흔하고 가벼운 결정조차도 고민하거나 선택할 권리가 없었습니다. 그저 매끼 영양사에 의해 짜인 식단표대로 밥을 먹고, 속이 안 좋아 식사를 하기 싫어도 억지로 먹어야만 하며, 다른 사람이 정해 준 일과대로 모든 행동을 통제받고 통장이나 도장 등은 만져보지도 못하고 생활지도원이 관리하는 것이 당연했습니다.
지역사회에 살던 ‘재가 장애인’도 상황이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장애인이 혼자 있다가 화재나 침수 등의 상황에 대처하지 못해 크게 다치거나 사망하는 사례도 많았습니다. 특히 휠체어를 탄 장애인은 완만한 경사로나 엘리베이터가 없으면 갈 수 있는 곳이 거의 없습니다. 아파도 동네 병·의원은 대부분 계단만 있기에 가지 못하고 참는 경우가 빈번합니다. 식당에 들어가서 식사를 하고 싶어도 턱이 있거나 좁아서 못 들어가는 일도 많았고 비장애인은 10초면 갈 수 있는 길을 경사로나 엘리베이터가 설치된 길로 돌고 돌아 10분이 넘는 일도 당연히 감수해야만 했습니다.
장애인도 권리의 주체
과거 부모님 세대에서 장애인은 불쌍한 눈길을 받았습니다. 혀를 차면서 안타까움 가득 담은 목소리로 “전생에 무슨 죄를 지었길래 쯧쯧” 같은 소리를 많이 들었다고 합니다. ‘병X’처럼 비하하는 욕설은 너무 흔했고요. 장애인 본인은 물론 장애인을 낳은 부모님 역시 죄인 된 마음으로 평생을 미안해하며 키우셨다고 합니다. 저희 외할머니와 어머니가 직접 겪으신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세대가 지나고 장애인에 대한 인식은 점점 달라지고 있습니다. 2008년 UN에서는 ‘UN 장애인권리협약(CRPD)’을 통해, 장애인은 불쌍하거나 보호받아야 할 동정의 대상이 아니라 천부적 존엄성과 가치, 마땅한 권리를 가진 주체임을 선언하였습니다. 선언문에는 존중받을 권리뿐 아니라 접근성에 대한 권리, 자립에 대한 권리, 이동권, 교육권, 건강권, 노동권, 적절한 생활수준과 사회적 보호 등의 생존권 등등 다양한 권리가 명시되어 있습니다. 대한민국도 이 협약을 비준하면서 이를 지켜야 할 의무가 있는 국가가 되었습니다…만, 우리나라는 조금 더딘 것 같습니다.
나아지고는 있지만
많은 장애인이 거리로 나와 욕 먹어가며 투쟁하고 UN장애인권리협약도 선언되면서, 장애인에 대한 인식과 당사자의 삶이 실제로도 조금씩 변하고 있습니다. 생활시설에서 권리를 모르고 살아가던 장애인들은 ‘탈시설’하여 조금씩 지역사회로 나오고 있고 제가 현재 담당하고 있는 ‘장애인 자립생활주택’이 그 과정 중 하나입니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라는 드라마 1화에서 회전문이 뭔지 몰라 지나가지 못하는 주인공에게 회전문이 어떤 것인지, 회전문을 어떻게 지나가는지 방법을 알려주고 옆에서 반복적으로 도와주어 자신감을 얻게 한 것과 같이, 평생을 시설에서 살아 사회의 많은 것을 경험해보지 못한 장애인 당사자에게 ‘자립생활주택’이라는 곳에 살면서 스스로 선택하고 결정하고 경험할 수 있도록 기회와 정보 등을 제공합니다. 의식주를 준비하는 과정을 거쳐 ‘보호’를 받는 것에 그치지 않고 지역 사회에서 자아실현을 위한 자립생활을 시작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습니다. 또한 장애인 당사자의 신체적 지원과 활동을 돕기 위한 ‘장애인 활동 지원서비스’가 제공되고 있어 재가 장애인의 가족이 모든 것을 떠안고 24시간 돌보아야만 했던 부담을 조금이라도 덜 수 있게 되었고, 최중증 신체장애인도 활동지원사를 통해 안정적인 생활을 하거나 일자리에 참여하는 등 필요한 지원을 받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답보 상태인 것도 많습니다. 최저 임금법 7조 ‘1. 정신장애나 신체장애로 근로능력이 현저히 낮은 사람 2. 그 밖에 최저임금을 적용하는 것이 적당하지 아니하다고 인정되는 사람’은 최저임금법 대상에서 제외될 수 있어, 장애인 보호작업장 중에는 풀타임에 가까운 9시 출근 5시 퇴근을 하면서도 월급이 10~20만 원밖에 안 되는 곳이 허다합니다. 심지어 식비는 별도로 내야 하고요. 이동권을 위해 장애인 콜택시가 도입 되었지만, 장애인 인구에 비해 턱없이 부족하여 가까운 곳을 갈 때도 한두 시간 기다리는 게 흔합니다. 집에 돌아가려면 또다시 한두 시간 기다려야 하고요. 교통약자를 위해 저상버스가 도입되었지만, 저상버스를 타기도 쉽지 않습니다. 배차시간을 지키기 빠듯하거나 다른 승객의 출퇴근길이 길어지면 기사님이 화를 내는 경우가 많아 대부분의 장애인은 저상버스 타기를 포기합니다.
장애인을 비롯한 교통약자를 위해 지하철에 엘리베이터를 설치해 달라고 20년여 동안 요구하여 서울시 엘리베이터 설치율은 90%를 조금 넘었습니다. 하지만 아직 10%의 구간은 엘리베이터가 없어서, 불안정한 휠체어 리프트를 타고 20분 동안 오르락내리락하여 진이 빠지는 경우도 흔합니다. 그마저도 리프트에서 추락해서 다치거나 돌아가시는 사례가 종종 있습니다. 장애인도 기초생활 수급비로는 턱없이 부족해서 먹고 살려면 일을 해야 하고, 일하려면 출근을 해야 하는데, 출근길을 이동할 수 없어서 개선해달라고 매년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하지만 돌아오는 답변은 늘 같았습니다. “예산이 없다. 어렵다.”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소서
넷플릭스에 14분짜리 짧은 영상이 있습니다. 나치 시절을 단편적으로 담아냈는데, 처음에 이런 장면이 나옵니다.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퀴즈를 냅니다. “독일 가정의 하루 생활비가 5.5라이히 스마르크인데 유전병 환자 한 명의 하루 생활비와 치료비가 12라이히스마르크입니다. 독일 국민이 잃은 가치는 얼마일까요?” 한 학생이 “이런 사람들을 돌보는 데 그렇게 돈이 많이 들면 어떻게 해야 해요?”라는 질문을 하자 다른 학생이 “죽여야지”라고 답변합니다. 이후 나치 군인들이 장애인을 학살했고 1939년 히틀러가 실행한 ‘T4작전’으로 30만 명이 넘는 장애인이 살해당했다는 설명이 간략히 언급되며 짧은 영상이 마무리됩니다. 나치 시절 돈과 숫자 계산으로 사회적 약자(장애인)의 삶이 결정되었던 일이 오늘날 “예산이 없다”라는 말과 오버랩되는 것 같습니다.
오늘날에도 숫자 계산으로 장애인을 비롯한 교통 약자의 이동권 개선이 멈춥니다. 돌봄의 사각지대에 있는 가정의 부담은 여전히 무겁기만 합니다. 권리를 보장해 달라고 외치고 개선되지 않는 현실을 사회에 알리고자 장애인 당사자들이 거리로 나서면, 자신의 출퇴근 시간이 길어지고 차가 막힌다는 이유로 비난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언론과 미디어는 장애인이 왜 그렇게 길거리로 나와서 목소리를 높이는지,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를 알리기보다 돈 내놓으라고 떼쓰는 존재, 장애인만의 특권을 위한 이기적인 집단 정도로 여기며 불법 집회라고 규정합니다. 1939년의 T4와 오늘날의 현실이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습니다.
보호와 돌봄을 넘어서서
작년에 친구의 조카가 장애를 가지고 태어났습니다. 그리고 그 친구가 마음 아파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저는 이 일을 하면서 많은 장애인을 만나고 좋은 관계를 맺고 있지만, 이 땅에서 장애인으로 살아가는 삶이 어떤지, 장애인 가정이 어떻게 살아가는지를 많이 보았고 직접 겪어보기도 했기에 쉽게 위로하기가 어려웠습니다. 장애인 당사자와 그 가정의 삶이 개선되어 가는 점도 있지만, 아직 멈추어 있는 것도 많습니다. 여전히 장애인 당사자의 가정은 끝없이 반복되는 재활과 교육, 돌봄에 지쳐가고 있습니다.
가끔 사회가 장애인을 비롯한 약자를 ‘특별히’ 구분 짓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대표적인 예가 장애인 콜택시입니다. 턱없이 적은 장애인 콜택시도 장애인 아무나 이용하지는 못합니다. 중증이라고 인정받는 장애인만이 길고 어려운 등록과정을 거쳐 장애인 콜택시를 이용할 수 있는 자격을 얻습니다. 그런 문제점들이 있어 지하철이나 저상버스를 개선해달라고 하면 “장애인 콜택시 만들어줬으니 그거나 타라!” 소리를 들으며 원점으로 돌아옵니다. 이처럼 우리나라 장애인 정책에는 장애인을 ‘특별히’ 구분 지어 생기는 크고 작은 문제들이 있습니다.
미국 ‘옐로우캡’이라는 택시는 차량에 휠체어가 탈 수 있고 번거롭고 까다로운 등록절차도 없어 장애인과 비장애인 구분 없이 누구나 이용할 수 있다고 합니다. 서울시 지하철에 엘리베이터가 90% 설치되면서 장애인뿐 아니라 어르신, 임산부 등의 교통약자들과 비장애인들도 편하게 엘리베이터를 이용하고 있고, 신축 건물마다 경사로를 설치하고 턱을 없애는 것이 제도화되면서 모든 사람이 불편을 느끼지 않고 있습니다. 이처럼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누구나 이용할 수 있도록 대중교통과 도시 설계에 ‘유니버셜 디자인’을 예산에 따른 선택적 사항이 아닌 당연한 기본으로 적용했으면 좋겠습니다. 그 외에도 장애인을 따로 구분 지으며 ‘보호’하려 하고 ‘돌봄을 제공’하는 것에만 그치는 기존의 사고를 넘어서서, 장애인과 비장애인 구분 없이 모두에게 편하고 모두에게 쉬운 법과 제도가 도입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전에 가장 먼저 우리 모두의 인식이 개선 되면 더더욱 좋겠고요.
학생 시절 “IVF의 ‘캠퍼스와 세상 속의 하나님 나라 운동’에서 말하는 하나님 나라가 어떤 나라냐”라는 질문에 누군가 ‘의가 가득하고 공평한 나라’로 대답하였던 것이 기억납니다. 그 나라가 이 사회와 우리 가운데, 장애인을 비롯한 약자들과 그 가정 가운데에도 이루어지길 소망합니다.
함께 기도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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